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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 100년, 東友 100인 <84> 최창봉

Posted by 신이 On 1월 - 21 - 2022

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82호)

 

 

 

 

동아방송 창설요원…‘정계야화’ 제작

 

 

 

 

최창봉(崔彰鳳, 1925∼2016)

 

 최창봉은 평생 방송 외길을 걸었으며 ‘한국 방송의 산증인’이라고 일컬어진다. 동아일보와는 1963년 4월 25일 개국한 동아방송의 창설 요원으로 인연을 맺는다.

  평북 의주에서 태어난 그는 홀로 월남해 고려대 영문학과에 재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소위로 입대했다. 1956년 한국 최초의 상업TV인 HLKZ(종로TV), 1960년 MBC라디오 개국을 주도했으며, 1961년 KBS 개국에도 관여했다. 1962년 봄 그는 최두선 동아일보 사장과 김상만 전무에게서 동아방송 개국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는 동아방송 차장으로 입사해 방송부장, 국장대리 등으로 8년 동안 재직하며 동아방송의 기틀을 다졌다.

  초창기 동아방송은 영리기업이 아니라 동아일보의 사시(민족, 민주, 문화)를 민중매체를 통해 구현한다는 의지가 강했으며, 경영진은 PD, 아나운서, 연기자의 선발도 그에게 일임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그는 소위 ‘최창봉 사단’을 이끌며 ‘정계야화’ ‘여명 80년’ ‘조선총독부’ ‘특별수사본부’ ‘3시의 다이얼’ 등 화제의 프로그램을 줄줄이 세상에 선보였다. 이들 프로는 ‘방송=오락’이라는 등식을 깨고 뉴스의 잠재력을 극대화 한 것이었다. 특히 ‘앵무새’라는 방송칼럼은 사회고발적 성격이 강했는데, 군사정권은 이를 문제 삼아 1964년 6월 최창봉 방송부장과 고재언 뉴스실장 등 6명을 구속해 군법회의에 회부했다.

  그는 동아방송을 떠난 후 KBS 부사장, MBC 사장, 한국방송진흥원 이사장, 한국방송인회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금관문화훈장, 충무무공훈장, 호암문화상 등을 받았다. 2010년 동아일보사는 ‘방송과 나 : 영원한 PD 최창봉의 방송인생 다큐멘터리’라는 그의 자서전을 펴냈다.

 

심규선(동우회보 편집주간·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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