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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 100년, 東友 100인 <87> 송건호

Posted by 신이 On 1월 - 21 - 2022

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82호)

 

 

 

 

 

술 담배 雜技 전혀 하지 않은 ‘송진사’

 

 

 

송건호(宋建鎬, 1927∼2001)

 

  송건호는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행정학과)를 졸업했다. 대한통신, 조선일보, 한국일보, 자유신문, 세계일보, 민국일보를 거쳐 1965년 경향신문 부주필과 편집국장을 지내고 1966년 다시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들어간다. 동아일보와는 1969년 논설위원으로 인연을 맺는다. 1973년 수석논설위원을 거쳐 1975년 편집국장 재직 당시 광고사태로 기자들이 대거 해직당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직했다.

  재야인사 시절인 1980년 ‘134인 지식인선언문’을 작성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면서 옥고를 치른다.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를 만들어 의장에 취임하고, 이듬해 월간지 ‘말’을 창간한다. 이 잡지는 1986년 군사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해 관심을 끌었다. 1978년 신진학자들과 함께 저술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롯해 ‘민족 지성의 탐구’ ‘한국현대사론’ 등 2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때 사장, 회장, 고문으로 일하다 1994년 은퇴했다.

  그는 술, 담배, 잡기를 하지 않고 큰 소리도 내지 않지만, 원칙과 소신이 뚜렷해 ‘송 진사’로 불렸다. 그의 인생 역정 때문인지 ‘한국 언론의 사표’ ‘해직기자의 대부’라는 말도 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에게 “청이 있으면 말해 보라”고 하자 “요즘 지방에 공장을 많이 세웠다고 하는데 그걸 보고 싶다”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나중에 산업시찰을 다녀왔다.

  송건호는 생전에 심산학술상, 호암언론상, 금관문화훈장, 사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한겨레신문사와 청암언론문화재단은 2002년 ‘송건호언론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으며(청암은 송건호의 호), 한길사는 같은 해 ‘송건호 전집’ 20권을 펴냈다.

 

심규선(동우회보 편집주간·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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