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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 100년, 東友 100인 <73> 김성한

Posted by 신이 On 7월 - 9 - 2021

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79호)

 

 

 

 

 

언론과 문학 두 분야에서 뚜렷한 발자취

 

 

 

 

 

김성한(金聲翰, 1919∼2010)

 

 

 김성한은 언론과 문학, 두 분야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소설가로서의 명성이 워낙 뛰어나 종종 언론인의 위상을 가리지만 그는 동아일보에서만 23년을 근속한 중량급 언론인이다. 사상계 주간으로 일하다 딱 한 번 동아일보로 옮겼고 동아일보를 퇴직하며 언론인 생활을 접었다. 나머지 생은 깨끗하게 소설가로 살았다. 그래서 그를 ‘선비형 언론인의 전형’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는 1919년 함남 풍산에서 태어났다. 성남공립중학교와 일본 야마구치(山口) 고교를 거쳐 1942년 동경제대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일본의 패전으로 중퇴했다. 50년대에 국민대 경제학과를, 60년대에 영국 맨체스터대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했다.

  김성한은 1955년부터 3년간 사상계 주간으로 일하다 1958년 2월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옮긴다. 현장 기자가 아니라 ‘논객’으로 언론인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 후 출판국 신동아·여성동아·동아연감 주간, 출판국장, 출판주간, 편집국장, 논설주간, 편집인(상무), 안보통일문제조사연구소장 등으로 일했다. 편집국, 출판국, 논설실의 책임자를 모두 지낸 점이 눈에 띈다.

  그가 논설주간으로 있던 시기는 유신 말기로, 정권으로부터 갖가지 압력을 받았을 텐데도 일체 내색을 하지 않고, 그저 “소신대로 쓰라”고만 했다고 한다. 1980년 ‘서울의 봄’ 때는 3김의 유불리를 따지는 정국 분석을 듣고 김성한은 “아닐걸요, 앞으로 군부가 정권을 잡을 겁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남시욱 씨는 “그는 저항적인 언론인이나 올곧은 언론인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차원 높은 역사적 안목과 통찰력을 지닌 언론인”이라고 평가했다(남시욱, 한국언론인물사화 7권, 2010).

  소설가로서의 김성한은 동아일보 입사 전인 1950년 「무명로」(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1956년 「바비도」로 주목을 받았고, 동아일보에서 일하던 1966년 「이성계」, 동아일보를 잠시 떠나 있던 1976년 「이마」 등 역작을 발표했으며, 동아일보 퇴직 후 20년간 「요하」 「왕건」 「임진왜란」 「진시황제」 등 주로 장편 역사소설을 썼다. 그의 초기 작품은 ‘지적이고 풍자적인 수법으로 권위에 의한 부정과 부조리에 항거하고 비판하는 경향을 띠었다’(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는 평가를 받았다.

 

– 글 · 심규선 (동우회보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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