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77호)
신춘문예 詩 당선…仁村, 未堂에 사회·문화부장 맡겨
서정주(徐廷柱, 1914∼2000)
여기서는 동아일보와의 인연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정주는 인촌 선생과 마찬가지로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가 인촌의 양부(養父)인 기중(祺中) 씨댁에서 일했기 때문에 인촌과도 인연이 깊다.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해방 후 취직자리가 없어 인촌의 넷째 아들(상흠)에게 부탁해 동아일보사에 들어갔다고 한다(인촌 김성수 사상과 일화, 동아일보사, 1985).
그는 1936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壁)’이 당선돼 필명을 알리기 시작했다. 1948~1953년까지 사회부장과 문화부장을 지낸다. 사회부장 시절 인촌과 한 상에서 미군정의 대접을 받을 때 인촌이 “자네가 우리말을 썩 잘 다루는 좋은 시인이 되었다면서? 잘 했네 잘 했어! 어디, 우리 동아일보 한번 잘 꾸며 보아”라고 했다는 것이다. 인촌이 그를 대뜸 사회부장과 문화부장으로 대접한 한 것은 그의 문재(文才)를 높이 평가한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잡지편집 경력밖에 없는 나로서는 이건 매우 졸업해내기 힘든 일 이었다”고 회고한 것으로 보아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꼈던 듯하다(동아일보 1971년 4월 1일자).
심규선 (동우회보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