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변 東亞 100년, 자랑스런 東友 100인 (동우회보 제76호)
교사 군수 경찰간부 등 역임…해박한 논설로 정곡 찔러
이종극(李鍾極, 1907∼1988)
1955년 5월부터 1962년 1월까지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했다. 논설위원 재직 전후의 다양한 이력이 눈길을 끈다.
1907년 평남 강서에서 태어났다. 1929년 경성사범학교 연습과를 졸업한 후 전남 북평공립보통학교, 순천공립보통학교 교사를 거쳐 1934년 중등학교 교원검정시험(영어)에 합격했다. 1939년에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해 평남 강동, 덕천, 성천군수를 역임했다. 해방 후 광주사범학교 교장, 1950년 국립경찰학교 교장(경무관), 1951년 내무부 치안국 교육과장을 거쳐 1955년 잠시 중앙대 법정대 교수로 일했다. 이후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돼 6년 반 동안 근무한다. 동아일보를 떠나기 전인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사법위원회 자문위원과 의장 고문으로, 동아일보를 퇴사해서는 연세대 법정대 교수와 변호사 등으로 일했다. 1963년 비례대표로 제6대 국회의원이 돼 민주공화당 정책위의장 겸 당무위원을 맡았다. 국회의원을 물러난 1967년 서울신문 주필이 됐다.
여러 자료가 그의 대표적 직함을 ‘법학자’로 소개하고 있고, 1957년 학술원 회원이 된 것으로 미뤄 학문적 업적도 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교사, 군수, 경찰, 교수 등 다양한 현장 경력도 논설위원으로 일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글 심규선(동우회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