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의 미소(美蘇)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미국은 한국 문제를 유엔에 상정해 모스크바 결정과는 별도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다. 1947년 11월 유엔총회는 유엔 감시 하의 총선거라는 미국 안을 가결하는 동시에, 이 결의를 실천하기 위해 9개국 대표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을 구성했다. 그러나 소련이 유엔 위원단의 38선 이북 지역 입북을 거부함으로써 한반도 전역의 선거는 끝내 무산됐으며, 1948년 5월 남한에서만 선거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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