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모두 결렬되자 1947년 미국의 제안으로 ‘유엔 감시 아래 남북한 총선거 실시’가 유엔 총회에서 결의됐다. 그러나 1948년 1월 소련이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북한 방문을 거부하면서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결정됐다. 백범 김구 선생은 김규식과 함께 분단만은 막아보자는 일념으로 1948년 4월 평양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김일성, 김두봉과 남북협상 4자회담을 가졌으나 민족 통일정부의 물꼬를 트지 못하고 5월 5일 서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