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양중(尹亮重, 1931~2018)은 충남 논산 출신으로 공주사범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1961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후 정치부장, 도쿄지사장 겸 특파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60년 5월 29일 경향신문 기자 시절, 하야한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와이로 망명한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동아방송 부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정확하고 치밀한 뉴스를 내보내 ‘보도의 대부’로 불렸다. 동아방송이 KBS로 통폐합되자 KBS방송연구소장을 지냈다. 이후 서울 예술의전당 이사장, 금호개발 사장을 역임했다. 일민문화재단 이사장,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윤양중(尹亮重) (논산, 1931~ ) △ 61.5 기자(사회부), 사회부차장, 지방부장, 정치부장, 편집부국장, 도쿄지국장, 방송국뉴스담당부국장, 80.11 퇴사.

(역대사원명록, 동아일보사사 3권, 동아일보사, 1985)

역사적 특종 ‘이승만 박사 망명’

“이 박사 망명 특종 때문에 나는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동아일보에 스카우트 되어 그 뒤에도 여러 번 특종의 행운을 얻었다. ”

1957년 경향신문 공채 1기로 신문기자가 된 나는 2011년말 현재 동아일보사 감사(비상근)로 유관기관 책임자로 몸담고 있다. 햇수로 50여년, 그러나 지난 반세기를 완전히 기자로 뛴 것이 아니고 경향 강제폐간에 따른 공백과 언론통폐합으로 인한 동아방송의 퇴출 등으로 20여년의 공백이 있었으나 앞에 밝힌대로 아직도 신문사 근처를 맴돌고 있다.
어쨌거나 반세기란 일제강점기 보다 긴 기간이고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격동의 시대요, 커다란 변혁의 시절이 아닐 수 없다. 8·15 해방과 건국, 6·25 전쟁, 4·19 의거와 5·16 군사쿠데타 등으로 정권도 이승만 이후 열 번이나 바뀌었다(과도정부 포함).

경향신문 폐간

1959년 4월 30일 밤, 당시 나는 법조의 2진이었다. 경향은 카톨릭교계 재단 산파였고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政敵)인 장면을 지지하는 야당지로 동아일보와 발행부수 1위를 다투던 때였다. 연초부터 폐간설이 분분했다. 마침내 정부 공보실(실장 전성천) 직원이 신문발행허가 취소통지서(폐간)를 한밤중에 송달하였던 것이다.
폐간에 적용된 법률은 미 군정법령 제88호(언론 및 집회에관한 군정법령) 위반이었다. 열거된 폐간 사유는 (1)‘ 1959년 1월 11일자 사설’ 정부여당의 지리멸렬상’ (2) 동년 2월 4일자 조간 1면 칼럼 여적(餘滴) (3) 같은 해 2월 6일자 조간 3면의 강원도 홍천지국 발 기사‘사단장은 기름 팔아먹고’ (4) 같은 해 4월 3일자 조간 사회면 기사‘간첩 하(河) 아무개체포’ (5) 같은 해 4월 15일자 이승만 대통령 회견기사 중 일부 허위보도 등 다섯 가지였다.
경향신문은 서울 고법에 행정소송과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는데 소송 대리인은 이날 공화당 당의장을 지낸 정구영 변호사를 비롯, 장면 정권 때 검찰총장 이태희씨, 역시 장면계인 정일형 외무장관과 이태영 변호사의 사위인 김흥한씨 등이었다. 행정처분의 근거로 군정법령(제88호)을 적용한 것이 위헌이라는 골자였다. 가처분신청서 요건인‘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으로는 (1) 20여만 고정 독자의 상실 (2) 300여 종
업원의 생계곤란 (3) 채권확보난으로 인한 재정손실 등을 들었다.
그러나 법원은 같은 해 6월 26일자로 ‘이유있다’고 받아 들였고 정부는 같은 날 부랴부랴 국무회의를 열어 “법원의 의견을 존중한다”면서 기왕의 폐간처분을 ‘무기정간’으로 바꿨다. 상식으로는 믿기지 않는 처사였다. 법원도 그 뒤 무기정간처분에 대한 본안소송과 가처분신청사건을 서울 고법은 기각하고 대법원 상고심도 질질 끌다가 1년 후 4·19 학생 의거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하던 날에야 부랴부랴 가처분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승만 박사 하와이 망명

그날 1960년 5월 29일은 마침 일요일이자 단오 날이었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은 아직 비상계엄하였고 4·19로부터 40일이 지난 청명한 늦봄의 화창한 날씨였다.
나는 전날(토요일) 밤 11시 쯤 야간 사건 담당으로 숙직이었다. 책상위의 벨이 울려 받아보니 중년 남자였다. “ 경향신문 편집국입니까? 내 얘길 잘 들으시오. 내일 이화장을 잘 지켜보면 큰 기사거리가 있을거요”
그 남자는 내가 미처 반문할 겨를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의아하기는 했지만 신중한 말투로 보아 장난전화 같지는 않았다. 바로 얼마 전 하야한 이승만의 거처가 이화장이라는 것은 신문을 보는 사람이면 상식이었다.
그때 내 머리에 퍼뜩 떠오른 것이 그 날짜 동아일보 1면 톱 기사였다.
‘이 박사 망명설’이라는 제목에 주한미국대사란 주변의 외교소식통을 인용한 단독기사였다. 이 박사가 머지않아 망명할 것이라는 일종의 관측 기사였는데 정치부기자가 아니었던 나에게는 남의 동네 얘기였다.
그러나 방금 받은 전화 제보의 충격도 있고 해서 ‘혹시나’ 했다. 나는 그 기사를 되풀이해서 읽고 ‘한 번 부딪혀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신태민 사회부장에게 전화로 보고 하였더니 그도 한 번 취재해 보라고 했다. 그때‘경향’사진부기자는 모두 6명이었는데 전화를 가진 사람은 김수종 부장(1999년 1월 78세로 작고) 뿐이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내일 새벽 중요한 사건이 있는데 제가 모시고 가야겠다”고 약속 한 후 숙직 운전기사 양의석씨에게도 통금이 해제되면 출발할 테니 신문사 깃발은 미리 떼어 두라고 일렀다.
당시 ‘경향’은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맞은편 구 정판사의 별관 2층에 편집국이 있었다. 통금이 해제 되자 우리는 이화장으로 가기 전에 광화문 동아일보사로 갔다. 현관 셔터는 내려져 있고 신문 게시판에 망명에 관한 속보는 없었다. 이어 가까운 중학동 한국일보사로 가서 막 조간 발송을 나가던 차에서 신문 한 부를 얻어 훑어 보았으나 망명 관련 기사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때 문득 ‘허탕 아니면 아마 큰 특종을 할 수 있겠다.’ 싶어 김 부장과 서로 눈짓을 했었다. 이윽고 이화장에 당도한 것은 새벽 5시 반경,
주변은 아직 어둑어둑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경관 한 두명이 정원을 왔다 갔다할 뿐 경계는 삼엄하지 않았다. 이화장 문앞(오른쪽) 구멍가게로 가서 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20여분이 지나자 검정 세단 한 대가 들어 는데 내리는 사람을 보니 키가 훤칠한 이수영 외무차관이었다.
그가 육군대령으로 판문점 연락장교단장일 때 유엔군 출입을 겸했던 나는 그를 기억할 수 있었다. 당시는 허정 외무장관이 수석국무위원으로 과도정부 수반이었으므로 이수영씨는 외무장관서리였다. 그때 시각이 아침 6시 반경, 이제 이 박사의 망명은 틀림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곧 벌어질 상황에 긴장은 더해 갔다.
얼마쯤 지났을까 드디어 흰 중절모를 쓴 이승만 박사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댓돌을 내려서 전용차에 올랐다. 운전사 옆 앞자리에는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경무대 경찰서의 경호책임자인 김창근 경감이 잽사게 올라타자 곧 바로 이 박사 일행은 이화장을 떠났다.

단오날 서울 거리와 김포 가도

차량 행렬은 맨 앞에 경호 지프-이 박사의 검정색 뷰익세단-외무차관 승용차(세단)-경호관 수명을 태운 차 등 4대였고 그 뒤로 ‘경향’ 깃발을 뗀 베이지색 하드탑 지프가 바짝 뒤따랐다. 일행은 원남동 로터리와 비원 돈화문 앞을 거쳐 김영삼 정부 때 헐리기 전의 중앙청과 광화문 네거리와 서울역 앞을 막힘없이 달렸다.
차량 통행도 많지 않았고 신호등도 잘 터졌다. 삼각지를 지날 무렵 나는 잠시 긴장했었다. 이 박사의 차량행렬이 삼각지 로터리에서 만약 왼쪽으로 꺾는다면 만사는 끝이라는 생각이 떠 올랐다. 미 8군 121후송병원이 용산기지 안에 있었고 그 곳에서 헬리콥터를 이용하면 여의도 비행장이든 김포 비행장이든 오산 미 공군기지든 어디든지 갈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박사의 차량 행렬은 한강 인도교를 지나 천천히 김포 가도로 접어 들었다. 계절은 모내기를 하기 직전이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김포가도는 비포장 2차도로였고 길 양쪽 논에는 물이 가득차 있었다.
가도로 올라선 이 박사 세단이 갑자기 멈춰 섰다. 뒤따르던 우리 취재차량을 가리키며 뭔가를 묻는 것 같았다.
나중에 이 박사 차 앞자리에 탔던 김경감이 말해 주었지만 자기가 먼저 “신문사 취재차가 뒤따라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 하고 물었더니 “놔두게”라고 했다는 것이다. 85세의 노 정치인은 자신이 고국을 떠나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 차 안에서 이 박사는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북한산을 가리키며 옆자리의 부인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는 필시 도연명의 사시(四時) 첫 구절인 ‘춘수는 만사택(滿四澤)이요 하운(夏雲) 다기봉(多奇峰)’이라는 구절이 떠올라 김포공항에 도착 후 김경감에게 확인하였더니 그런 것 같다는 것이었다. 오전 8시가 가까웠을까 이 박사 세단은 김포공항 청사에 당도하였다.
가건물인(미군용) 퀸세트를 지나 활주로에 서 있는 여객기 옆에는 허정 과도 수반이 단정한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허정씨가 서울시장일때 출입기자였으므로 서로 아는 사이였다. 그는 “윤기자 왔구먼”하고 웃는 낯으로 내 인사를 받아 주었다. 이제 쫓겨날 것 같지는 않아 적이 안심이 되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김수종씨가 열심히 사진을 찍는 사이 나는 이 박사에게 다가가 경향신문 기자라고 밝히고“국민에게 한 말씀 남겨주십시오”라고 트랩 아래서 질문하였다. 이 박사는 잠시 트랩을 오르던 걸음을 멈추고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 얘기를 하면 내 생각이 달라질는지 몰라. 다 이해해주고 이대로 떠나게 해 주어 ”라고 대답하였다. 남편 이 박사를 따르던 프랜체스카 여사에게도 소감을 물었다. 그녀는 ‘Nothing, but I love
Korea(아무것도 없어요, 단지 한국을 사랑합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비행기를 정비하는 한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다.
락웰(Rockwell) 기장과도 인터뷰 했는데 CAT항공사 소속인 그 중형여객기는 하와이 한국교민들이 전세 내어 그날 새벽 대만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부기장과 정비사, 승무원 한사람 등 모두 네사람이었고 좌석은 모두 40여개 였는데 손님은 물론 이 박사 내외뿐이었다. 도착 직후부터 꼼꼼이 점검하고 정비하는 것은 도중에 웨이크 섬에 잠시 내려 급유를 한 다음 하와이 호놀룰루까지 열 다섯 시간의 도양(渡洋)비행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이 박사 내외는 트랩을 올라 기내로 들어간뒤 좌우로 떨어져 자리 잡았다.

단출한 여장에 ‘쉬러가는 것’

기내로 따라 들어간 나를 허 수반은 “그쯤 해 두지”하고 만류했다.
경호원들의 제지 때문에 더는 인터뷰를 계속할 수 없었고 정비를 끝내기를 기다릴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 박사 내외가 휴대한 짐이라곤 4개의 중형 보스턴 백과 우산과 파라솔에 이 박사가 애용하던 단장을 한데 묶은 것, 케이스 없는 타이프라이터가 전부였다.
기내에 들어갔던 허수반과 이 외무차관, 나와 사진을 찍던 김 부장과 몇몇 경호원이 내리고 비행기는 엔진소리 요란하게 마침내 이륙하였다. 그때 시계를 보니 오전 8시 45분이었다.
그래서 이른바 세기적 특종을 해낸‘경향신문’은 호외와 그 날짜 석간에 1면에“이 박사 부처 돌연 하와이로 망명”이라는 통단 제목의 특종기사를 실었고 도하 각 신문도 호외를 냈고, AP, UP, INS, 로이터 등 외국통신들이 사진과 함께‘경향’의 특종을 인용,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사실 이때 이승만의 돌연한 출국은 망명이 아니라고 본인도 믿으려 했고 허수반 등이 애써‘휴양차 떠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망명은 정치적 박해를 피해 타국에 보호를 요청, 그 승인하에 그곳에 피신 정착하는 것을 말한다.
이승만은 혼란했던 국내 정세 특히 수많은 사상자를 낸 4·19 학생의거 때문에 스스로 하야했지만 그해 이미 85세의 고령이었으며 또 다시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계속할 뜻은 없었던 것 같다. 하와이에 도착한지 얼마 안되어 이승만은 여러 차례 귀국을 시도했지만 이미 집권한 박정희의 거부로 실현되지 못하다가 그가 90세이던 1965년 7월 19일 하와이에서 눈을 감았다. 유해는 고국에 운구되어 국민장으로 서울 현충원에 묻혔고 프란체스카 여사는 귀국 후 이화장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2년 뒤 이 박사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나 남편 곁에 묻혀있다.
벌써 햇수로 40여년이나 된 옛 얘기이다. 그때 일로 잊혀지지 않는 일의 하나는 ‘이승만 박사는 드디어 망명의 길을 떠났다’는 사설을 쓴 이관구 ‘경향’ 주필이 나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인 다음 문을 잠근 뒤 쓴 ‘노 박사의 여생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마지막 빌어 마지 아니한다’는 구절을 한 사장의 간청을 물리치고 끝끝내 삭제하지 않은 일이다.

특종의 여건, 이젠 특종 어려워

이희승의 국어대사전을 보면 특종기사란 신문사 잡지사 등에서 그 사에서만 얻은 중대한 기사라고 되어있고 일본이나 영국의 사전에도 ‘신문 등에서 입수한 기사재료’라고 구 매체인 인쇄매체가 요건임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도 요즘은 속보성이 강한 방송이나 인터넷 혹은 지난 7월 서울 우면산 물난리 때 보았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위력은 TV에서 일상적으로 시청하듯이 이제 신문기사의 특종
은 매우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이 박사 망명관련 특종은 한밤중에 걸려온 제보전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지만 그 전날 동아일보 이웅희(전 문공장관, 3선국회의원)기자의 ‘망명설’ 기사가 밑거름인 것이 사실이다. 이 기자는 ‘설마 다음날 일요일에야 떠나랴’하고 방심했었다고 어디선가 말했다.
그 특종 때문에 나는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동아일보에 스카우트되어 그 뒤에도 여러 번 특종의 행운을 얻었다. 무엇보다도 긍지와 자신감이 생겼고 전화위복으로 특종의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자랑같아 쑥스럽지만 인정을 받는 기자가 되었고 타사에서 스카웃트 제의가 이어져 내외로 승승장구 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박사 망명 특종기사가 계기가 되어 나의 언론인으로서의 생활이 한결 다양하고 윤택해 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 필자 : 1931년 12월 1일생, 공주사대 국문과 졸업, 미국 인디아주립대 신문대학원 수료, 경향신문 정치부장 편집부국장 도쿄 특파원 논설위원, 동아방송 보도국장 KBS 방송연구소장, 현대사회연구소소장, 일민문화재단 이사장(현)

(윤양중, ‘역사적 특종 ‘이승만 박사 망명’’, 실록 언론언론인의길(1)  그때 그 현장 못다 한 이야기’, 2011)

[창간기념 제언] 맏형다운 꿋꿋함으로 정론을

동아일보는 언제나 권력과의 긴장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일제 시대 학정에 항거해 왔으며 군사독재정권에 맞서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지난 정부에서도 동아일보는 갖은 핍박에 맞서 언론으로서의 정도를 걸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80년 군사정권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20년간 몸담았던 동아일보를 떠나면서도 단 한시도 동아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은 적이 없습니다. 동아일보에 근무할 때는 실감하지 못했지만 떠난 뒤에는 동아일보가 얼마나 ‘큰 나무’였는지를 뒤늦게 깨닫기도 했습니다.

요즘도 편집국에 근무했을 때처럼 동아일보와 경쟁지를 비교해 보며 어느 신문이 충실한 보도를 했는지 가늠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최고의 자리를 다른 신문에 넘겨주었을 때는 한없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동아일보가 예전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보면 최근 들어 동아일보를 펼쳐든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로 국가적 좌표가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서도 맏형다운 꿋꿋함으로 올곧은 목소리를 내는 언론은 오직 동아일보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바뀐다 해도 언론이 가야 할 정론직필의 길을 의연하게 갈 수 있는 신문은 동아일보 외에는 없습니다. 국민이 동아일보를 사랑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 동아일보를 지키고 있는 여러분은 물론 회사를 떠난 선배들까지, 모든 동아가족이 끈끈하게 결속하는 동시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정상의 자리를 탈환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동아가족 모두가 자신이 최종 책임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업무에 임해달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자세로 임할 때 동아일보의 1위 탈환 시점은 더욱 앞당겨질 것입니다.

또 필진을 젊은 층으로 확대해 지면에 다양한 목소리가 담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일보는 부패한 권력에 대한 엄중한 꾸짖음은 물론, 변화를 요구하는 새로운 시각까지 한데 담을 수 있는 큰그릇이어야 합니다.

끝으로 창간 83주년 기념식장에서는 새롭게 도약하는 동아의 모습을 재확인할 수 있어 선배로서 뿌듯함을 느꼈다는 점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동아일보 83번째 생일을 바라보는 노선배의 소회입니다. 동아일보의 건승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윤양중 감사, ‘창간기념 제언- 맏형다운 꿋꿋함으로 정론을’, 동우(東友), 2003년 5월)

윤양중 동우 별세

윤양중 전 일민문화재단 이사장이 지난 1월 1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공주사범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동아일보에 입사한 후 정치부장, 도쿄지사장 겸 특파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기자 시절, 하야한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와이로 망명한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고인은 동아방송 보도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정확하고 치밀한 뉴스를 내보내 ‘보도의 대부’로 불렸다.
동아방송이 KBS로 통폐합되자 KBS방송연구소장을 지냈다. 이후 서울 예술의전당 이사장, 금호개발 사장, 금호타이어 사장 시절 수출공로상을 수상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이병대 대한언론인회 회장은 “카리스마 있는 성격에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던 분”이라고 추모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내 이호순 씨와 아들 석주 씨(미국 변호사), 딸 혜경 혜성 씨 등 1남 2녀가 있다.

(동우회보 2018년 1월 23일)

[명복을 빕니다] 윤양중 前일민문화재단 이사장

 ‘이승만 망명’ 특종보도… 문화-경제에 큰 공헌

윤양중 전 일민문화재단 이사장(사진)이 1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충남 논산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공주사범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동아일보에 입사한 후 정치부장, 도쿄지사장 겸 특파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기자 시절, 하야한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와이로 망명한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고인은 동아방송 보도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정확하고 치밀한 뉴스를 내보내 ‘보도의 대부’로 불렸다. 동아방송이 KBS로 통폐합되자 KBS방송연구소장을 지냈다.

이후 서울 예술의전당 이사장, 금호개발 사장을 역임했다. 금호타이어 사장 시절 수출공로상을 수상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이병대 대한언론인회장은 “카리스마 있는 성격에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던 분”이라고 추모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내 이호순 씨와 아들 석주 씨(미국 변호사), 딸 혜경 혜성 씨 등 1남 2녀가 있다. 며느리는 한상은 미국 변호사, 외손주는 원윤정 프로골퍼, 승재 MBC 프로듀서.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22일 오전 8시 반. 

(동아일보 2018년 1월 20일자 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