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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Ⅱ 149 : 24파동

Posted by 신이 On 12월 - 3 - 2013

1958년 12월 24일의 ‘24파동’은 무술경관을 경위로 급조해 국회에서 농성중이던 야당 국회의원들을 의사당밖으로 끌어낸 사건이었다.
동아일보 1958년 12월 25일자 3면 기사는 이 사건을 낱낱이 보도했다.

 

“58년 12월 24일 비상데 돌입한 시경 산하 전경찰이 의사당을 포위한 채 전국에서 뽑아온 300명의 무술경관을 경위로 급조하여 언론조항을 포함한 신국가보안법을 반대하고 국회에서 농성중이던 90여 야당국회의원을 의사당 밖으로 끌어냈다. 자유당만의 국회는 보안법은 물론 예산안과 개정지자법(改正地自法)까지 무더기로 통과시켰다.” (동아의 지면반세기, 동아일보사, 1970)

 

“어떤 무술경관은 사지를 뻗대며 안간힘을 쓰는 젊은 의원에게는 옆구리를 발로 차기도 했고 또 어떤 자는 머리통을 잡아 끌어당기기도 하는 등 난장질을 해댔다. 어떤 의원의 머리에서는 의자 모서리에 부딪힌 탓인지 붉은 피가 흘러 얼굴을 타고 내렸다. 40여 분에 걸친 무술경관들의 폭력 행사에 이끌려 의원들은 의사당 지하 식당에 내던져졌다. 폭력이 휩쓸고 간 대의의 전당인 의사당 안에는 넉살좋게 자유당 의원들만이 모여 도둑고양이 생선토막 채가듯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야당지로서 사세가 급성장하고 있던 <동아일보>는 거침없이 1면 머릿기사로 “헌정사상 미증유의 비극이 24일 국회에서 폭발됐다”고 보도했다.” (김영호, 한국 언론의 사회사 上, 지식산업사, 2004)

 

동아일보 1958년 12월 25일자 3면

 

 폭력감금뒤에 폭력축출, 6시간만에 야당의원 해산강요, 의사당앞에서 또 난투, 무장경관들이 강제로 차에 태워 귀가케

『농성국회최후의날』- 이 나라 헌정사(憲政史)에 씻지못할 오점을 남기며 처참한 비극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1958년12월24일- 무술경관들의 폭력에의하여 여섯시간동안이나 물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감금당하였던 농성야당 의원들은 오후 세시5○분경에야 사복형사들에의하여 의사당밖으로 밀려나와 이번에는 의사당밖이 처절한 아우성과 난투의 도가니로 화했다『만세!』『대한민국의 간판을갈아라!』『아이고!아이고!』- 울부짖는야당의원들은 또다시 완력형사대에의하여 강제로 차에 태워졌다 그러나 이들이『민주당』의원부연락처로 모여들자 전투복을 입고 완전무장한 5○여명의 경찰기동대는 또동의원부로 통하는 정동거리를 교통차단하고 야당의원들의 해산을 강요하여 결국 야당의원들은 네시17분경 한사람한사람 피눈물을 뿌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폭력에 억눌려 국회농성 엿새만에 집으로 돌아간 야당의원들의 통곡속에『민주주의』에의 영원한 거역의 역사를남기고 이제정녕『보안법파동』은 한고비 흘러갔는가?-

○-「농성야당의원」축출의 광풍이 지나간후「자유당」의원들은 태연히 의석에 앉아「국가보안법안」「지방자치법개정안」「세법개정안」「예산에 수반되는 제동의안」기타안건 참의원선거법시행에관한법안 92년도 총예산안등 산더미같은 안건을 단몇시간동안에 일사천리로 깨끗이 통과시켜버렸다
모든제안설명、질의、토론을 생략하고『잘 한다!』- 『이의없소!』-「딱!딱!딱!』-
대사(?)를 치르고난후「자유당」의원들은 의원총회를 하러 의원총회실로 가벼ㅂ게들 말을 옮겼다

○- 얼마후- 세시5○분경 그동안 국회지하실「레스트랑」과「휴계실」「무소속실』에 감금당하고있던 야당의원들은 무장특경대와 사복형사들에 의하여 비로소 석방되었다

○- 먼저「레스트랑』에서 이철승 김상단의원등 2○여명이 눈물을 흘리면서「스크람」을 짜고 밖으로 나왔다「대한민국만세!만세!」-

○- 의사당밖으로 밀려나간 김상단의원은『이놈들!「동조」(東條)와「힛틀러」가 망한것을 생각하라!오늘부터 대한민국의 간판을 갈아라!이제 대한민국은 학살당하였으니 내 여기서 곡하지!아이고!아이고!아이고!』- 비통하게 통곡하자 사복형사들은 다시 김의원을 밀어서 억지로 자동차에 태우려고 하였다 여러의원들은 할수없이 각기 자동차를 타고 혹은 걸어서「정동」제2방송국앞에 있는 민주당의원부연락처로 향하였다

○- 민관식의원은 감금 여섯시간의 회고를 말하여『우리는 개처럼 끌려들어 갔어요 우리는 그곳에서 엄숙히 애국가를 봉창하고 만세를 불렀지요』-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 세시55분경 휴계실과 무소속실의 문이 열리고 조병옥박사를 위시하여 윤명운 유청의원등 3○억명의 의원들이 울음섞인「만세」를 부르면서 역시정·사복경관들에 의하여 의사당밖으로 밀려나왔다
조박사는 눈물을 머금고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으며 조영규의원은『내가 죽으려고 하였는데 죽기가 살기보다 힘들구나』하고 목을 놓아울었다
오위영의원은 목이메여 말도못하고 조박사와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고-

○- 그런데 이날 농성의원들이 감금되었던곳은 지하실식당이아니라 의사당에서 지하실식당으로 통하는 복도로서 그곳넓이는 두평가량밖에 안되었다고하며 그곳에 45명의 의원들이 갇혀있었다고 한다
너무좁기때문에 일부의원들은 계단에 앉았으며 변소에 갈때는 무장경관의 안내를 받았다는것이다

○- 야당의원들이 여기저기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통곡하자 돌연 사복형사들은「해산하라」고 소리치면서 울부짖는 야당의원들을 억지로 차에 태워 집으로 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김용진의원은『이제 민주주의는 죽었다』고 외치면서 민주당의원부쪽으로 걸어가고 유청 이종남의원등 5、6명의 의원들이 뒤따라가자 사복형사들은 의원한사람에 4、5명씩 달겨들어 떠밀며 자동차안으로 물건을 던지듯 집어넣었다

○- 이때- 의사당안팍은 여전히 정·사복무장경찰관들의 삼엄한 경계에 싸여 있었고「오토바이」「순찰차」등이 일체의 교통을 차단하고있는 가운데 돌연「추럭」소리가 요란하더니 전투복을입고 완전무장한 4·5십명가량의 기동경찰대원이 나타나서「아카데미·극장」앞골목과 제2방송국에서「민주당의원부」로 가는길을 차단하여 버렸다

○- 한떼의 형사대들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양이었는데 어떤 형사의말- 『나는큰일났어- 사진을 여러장찍혔으니 말이야-』- 아직도 뿌리만은 남아있는 양심의 외침이었으리라-

○- 이때에 외무부정문에서 나오던 어떤 외국여인은 이삼엄하고 살풍경한광경을 근4○분간이나 물끄럼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로서는 난생 처음보는「희·비극」이었던모양-

○- 민주당의원들 4、5십명은 네시경에「의원부연락처」에 모여서 한숨을 내뿜고 있었다 계란을 한알씩 깨뜨려먹으면서 말하는 피비린내나는 격투의 회고담- 경위들에 얻어맞아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있는 박찬현의원은『아이고 도둑놈들!글쎄 어떤 경위놈은 윤담의원의 목을 조르는데 퍼덕퍼덕 죽어가는것을 내가 보고 그경위를 발길로 걷어차서 겨우살아났어!』- 이철승의원은『나는 괜찮은데 앞이(齒)가 모두 흔들려-』-
손에 피를 흘리면서 붕대를 감고있는 조일재의원은『이놈들- 한대 갈겼더니 내손에 살점이 떨어졌지만 그놈도 아팠을거야!』-

○- 잠시후 경관들은「즉시 해산」을 강요하여 야당의원들은 협의한 끝에 이날은 이이상 더 격론을 일으키지 않기로 합의하고 네시17분경 자률적으로 해산-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농성 6일만에-

○- 집으로 돌아가는길에 박찬현의원은 기동경찰대가 삼엄한 경계를 계속하고있는「아카데미·극장」앞길에서 태연히 모자를 벗고 사진촬영을 하였는데 경위에게 얻어맞은 이마에는 붉은피가 서려있었다

○- 폭력과피-이것이「보안법파동」이 남긴 자국이었다

  

『울분의 6시간』, 감금당한 농성의원 투쟁기록

「민주주의」를 외치는「신호탄」(信號彈)은 24일 마침내 국회에서 그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나「민권투쟁」의점화(點火)는 이시각에 이루어진것이다- 이것은 24일「농성투쟁」에서 축출당하여 무려 여섯시간동안의 감금을 받고나온「국가보안법개악반대」야당국회의원들의 소감이다
엿새에 걸친「농성투쟁」「총지휘관」으로 활동한「민주당」소속 이철승의원의 말을 들어보았다- 농성투쟁이란 괴로운 것이었다
과거 이러한 경험이없는 의원들끼리의 모임이니 그랬던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원내뿐만아니라 원외에서도 호옹하여 줄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24일 드디어 축출되고 말았다
그동안 들려오는 정보는 너무나도 많아서 판단을 허용하지 않았다

23일까지는 그래도 자유당이 그와같이 폭악하게 나올것이라곤 판단하지 않았으나 23일 늦게 갑자기 다음과같은 정보의 신빙성을 깨달았다 치안국특정과장이 부평에있는 경찰전문학교에 파견되어 그곳에서 대기중인 전국무술경찰관들에게 훈련을 하고 있다고-
그훈련은 물론 야당의원을 축출하는 방법뿐만아니라 야당의원의 연령  성격등등을- 그때 국회직원이 대동되었다고 들었다 국회직원은 국회의사당의 구조 및 주변상황같은것을 설명하기 위하여서였다고 들었다
이소식을 들은 우리들은 이날아침 8시3○분을 기하여 회의를 열었다
그회의는「옥쇄회의」였다

『우리들은 기왕에 직면한 이문제를 옥쇄로서 투쟁하여야 할것이며 그럼으로써 이나라에 유익한 결과가 될것이니 각자 결심하고 우리의 임무를 수행하자』는 요지로 서로서로 마음의 맹세를 하였다
「애국가봉창」부터 시작하였다
의원부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한일이란 이날이 처음이다
순국선렬에 대한 묵념도 올렸다 누군가가 낮은흐느낌을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우리는 끝내 용감하려고 맹세하였다

이회의가 끝나자 우리들은 한희석부의장의 입장만을 기다렸다 이날(24일)사회는 한부의장이 사회를 하게되기때문이며 사회자가 단상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려는 의도였다 그랬더니 한의원의 입장은커녕 난데없이 갑자기 두어깨가 딱바라지고 몸집이 굵직하며 이때까지 보지도 못하였던「경위복」을 입은 군상이의사당의 이문저문에서 일제히 들어왔다
그뒤에 자유당원이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우리들은 미리짝을 꾸미기를 사회석을 점령하기 위하여 노인층을 사회석에、청장년은 의석에 자리잡기로 결정하였기때문에 경위들이 몰려들어오자 신호와 더불어 그와같이 배치되었는데 기대하였던 한희석의원은 들어오지않고 경위들은 드디어 행동을 개시하는 것이었다

단상에 있는 박순천여사를 경위들은 먼저 네사람이 달려들어 손을꺾고 비틀고 하면서 밖에 운반하였으며 밖에 운반한후에는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말았다
박여사는 기절상태였다「자유당」의원에게 보복을 하려고해도 경위들때문에 도무지 할수가 없었다 나는 김의준의원에게 한대 주먹의 세례를 먹이는데 성공하였으나 그후 3、4차나 그경위들의 방위진을 뜯으면서도 목적을 이루지못하였다

우리들은 드디어 장내에있는 경위의 축출과 그축출을 인계받은 사복경관들에의하여 국회안 지하실복도에 감금을 당하였다
약 6평정도의 복도다 쫓겨나는시달림- 반항하는피로- 이럭저럭 우리들은 흥분과 피곤과 땀과 울분에 벅차 모두들 몸부림쳤다 약6평정도의 복도에 4○명가량이 저장(貯藏?)되다시피 되었다『문좀열어다오!문좀!』하고 외치나 그곳을 감시하는경위들은 들은척만척- 질식상태였다 어떤의원은 물좀달라고 외쳤으나 경위는 역시 무표정이어서『이놈아!너는 부모도 형제도 없는놈이냐!사람이 목이말라 죽겠다』고 호통을 하여도 역시 별댓구가 없었다「포로」아닌 4○명의 야당의원은「애국가」를 불렀다 모두들 목이메여 울음반 노래반으로 불렀다 과거의선렬들의 유지를 받들자는 계속된 맹세였다

소변이 급하다
그러나 경위들은 내보내지 않는다
하는수없이「깡통」같은것을 가져오라해서 거기다가 보았다
대변은 경위5、6명에게 포위당하여 변소까지 감시당하면서 하곤하였다

『하느님 아버지시여 이나라의「민주주의」를 소생이켜주소서』- 김상단의원의 기도소리였다 신자아닌 의원들의 눈에서 그저눈물만 뚜벅뚜벅- 그러나 아무소리없는「포로수용소」였다
이러기를 약여섯시간- 『각기 돌아가실분은 모셔다 드리지요- 』경위들의 전달이었다
『이놈아 내집을 몰라서 데려다 달라고해?』노도와같은 호령이 터져나왔다- 이것이 여섯시간의「감금기」이다

  

8명이 입원가료, = 경상입은 의원들은『X·레이』찍고 귀가 =, 박순천 여사도 혼수상태

이날「세브란스」병원에 운반된 야당의원들은 1○여명에 달하였오나 일부의원들은 약간의 치료와「X레이」를 찍고난후 자택으로 돌아가고 8명의「미주당」의원들이 분산입원하여 응급치료를 받고있다

○- 입원한의원은 전영석·류성권·윤택중·조일환·박순천·박창화구철회·허윤수씨 등인데 병원측말에 의하면 대부분 타박상 골절상이라고 하며 외상을 입고 피를흘린 의원도 있으나「X레이」사진현상에 의하여 확실한 증세를 알수있다고 한다

○- 때마침「세브란스」병원은 네시45분경부터 정전이되어 촛불만이 아물거리는 어두운 병실안에서 의원들 가족은 흐느껴울면서 잠든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병원의사는 특히 전의원에겐「절대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 한편 지난번「국회의사당」에서 졸도실신후 입원생활을 계속해오던 김재곤의원은 위문하러온 민관식의원을 보자 손을잡고『이사람아、이사람아、- 』하며 통곡을 하고 있었다

○- 이날 병실에는 인촌선생의 미망인 이여사도 보였는데 이여사는 비통한 표정으로 분산수용된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제2병실에 입원한 박순천여사는 혼수상태에 빠져있었고 그옆에는 가족들과「민주당」부녀당원들이 촛불마저 꺼버리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있었다

○- 머리에 붕대를 감은 류의원은 기자를보자 몸을 절반일으키며『어떻게 됐어요?죽은사람은 없어요?』하며 성급하게 물었고 좀 회복되었다는 박창화의원은 두눈을 감은채 묵상에 잠기고 있었다

○- 복도에 서성거리고있는「민주당」시의원들이나 당원들은 저마다 말도없이 깊은한숨들을 내뿜고 있었는데 한편 이날오후 윤담、이영준등 일부 연로의원들은「X레이」사진을찍고 각기자택으로 돌아갔다(사진은 입원가료중인 야당의원들의 모습- (상)으로부터 전영석、박순천、류성권、윤택중、구철회、조일환、박창화 제의원)

  

간소한 성탄축하, 『빠』『땐스·홀』만 소란스런 광경

12월24일「크리스마스·이브」- 이날 서울의 밤거리는 예년과 다름없이 교회와 신자들의 성탄축하행사는 간소하나마 각가지로 진행되었는데-
명동을 중심으로한「땐스·홀」「스탠드·빠」등만은 빈틈없이 손님들로 꽉찬가운데 소란스러운 광경을 이루었다

○- 이날「보안법안」통과를 둘러싸고 신문가두판매를 읽고 난 시민들의 표정이 침통한 가운데에도 저녁이 다가오고 밤거리가 깊이지자 큰길가마다 쌍쌍을지은 긴치마의 여인과 남자들이 어디론지 향하여 걷고있는틈에 스치는「택시」만이 대경기를 이루운듯-

○- 「징글벨」과「싸이렌트·나이트」등「크리스마스」의 기분을 돋우는 음악으로 들끓는 명동의「스탠드·빠」마다 초적녁부터 손님들로 꽉차고「K·땐스·홀」「M ·땐스·홀」·「F·땐스·홀」등 모두가 일곱시반경넘어서부터「만원」딱지를 붙여가며 새로오는 손님은 거절하는 형편이었으나 예년과같이「딱총」이나 가면장식(「크라운」색안경등)으로 광기를 부리는장면은 별반볼수없었다-

○- 이날밤 명동 천주교성당을 비롯하여 각교회에서는 수많이모여든 신도들이 찬미가를 합창하며 비교적 경건한태도로 성탄축하를 하고 있었으며 특히 이날밤 자정의행사를 기다리는 신자들로 둘러싸인 천주교「성당」에 작년과같은「장식등」이 없는것이 무척 인상적으로 간소한 금년「크리스마스」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 한가지 이「거룩한밤」에도 보안법통과를 계기로 극도로 긴장한 서울시경 및 일선경찰서에서는 여전히 경찰관들의 비상대기태세 아래에 있었다(사진=「크리스마스이브」의 천주교당)

  

『사후투쟁』을 결의, 보안법 개악반대 경북투쟁위서

【대구발】24일 속개된 경북보안법개악반대투위는 오전 열시반경 김창숙지도위원 및 서상일위원장이하 24명인사 참석아래 시작되었는데 회의도중 자유당의원만으로 보안법이 통과되었다는 호외(號外)보도를 보고 그들은 극도로 흥분하고 즉시 사후투쟁결의를 굳게하는동시에 장문의 성명서를 채택하고 앞으로 전국투위지시아래 투쟁을 전개할 만반의 준비태세에 합의를보고 오후 다섯시반경 일단 해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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