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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toryⅡ 104 : 38선 돌파와 전선취재

Posted by 신이 On 7월 - 18 - 2013

 
동아일보 1950년 10월 7일자 1면 권오철 특파원이 보내온 제1신.

 

  10월 4일 속간한 동아일보는 전시의 혼란 속에서 자금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시설도 엉망이었다. 1 인쇄시설이 없어 조판을 한 뒤 연판을 메고 인쇄소를 찾아다니며 신문을 찍어야했다. 2 그러나 통일에 대한 희망에 부풀었고 전선에 종군기자도 보냈다.

  국군과 유엔군은 북괴군을 추격하여 북으로 38선을 향해 진격해 나갔다. 동해안을 따라 북상한 국군 제1군단의 제3사단은 태백산맥 동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북진했다. 수도사단은 태백산맥 서쪽 코스로 산안지대를 헤치고 진격했다. 국군 제3사단 23연대 3대대가 선봉으로 북진해 10월 1일 38선을 돌파하고 2일 각 부대가 대거 38선을 넘었다. 이후 국군은 중동부전선을, 유엔군은 서부전선을 맡아 계속 북진했다. 3

  동아일보는 장인갑 편집국장이 피랍되는 등 인력운용에 차질이 빚어지자 편집부에 있던 권오철 기자가 전선에 특파원으로 투입됐다. 4 권오철 기자는 10월 6일 유재흥 소장과 인터뷰했다. 유 소장은 제2군단 군단장이었다.

 

(○○기지에서 본사 권오철 특파원발 제1신) 5

(문) 일반은 이 기회에 완전한 실지 회복이 될 것을 확신하고 또한 염원하고 있는데 견해 여하
(답) 일반이 원하는대로 완전히 된다

(문) 6일 상오 10시 현재 귀군단의 진격상황 여하
(답) 한국군 제○사단 제○련대는 칠만오천키로왓트를 발전할 수 있는 구만리 발전소를 점령하였다 역시 동사단이 춘천 북방 륙키로 지점까지 진출하였으며 금명간에 화천도 함락할 것이다 이 방면 전투에서 거두운 전과는 포로 이백오십명 전차파괴 소총 지뢰 등 다수를 로 획하였다

(문) 독안의 쥐격인 괴뢰군 소멸에 대한 귀하의 자신은
(답) 자신만만하며 시간문제이다

(문) 외전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중공 외상 주은래가 괴뢰군을 원조하겠다고 언명한 바 있는데 이것이 사실화된다면 전국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는가. 또한 이에 대한 귀군단의 대책여하
(답) 문제는 이것이 사실화되느냐 아니냐가 문제인데 내 자신의 생각으로는 군수품 원조정도에 끝일 것이며 인적원조를 안하는 것이 중공자신을 위한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문) 광범한 탈환지역의 적극적인 정훈공작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계획은 수립되었는가
(답) 오년동안 공산주의 탄압 밑에서 신음한 북한에 들어가게 되는 만큼 남한에서 실시하던 몇 배의 정훈공작을 전개할 것이며 제일선에 교육자 문화인 등도 광범히 인원을 동원하여 파견하겠다. (동아일보 1950년 10월 7일자 1면)

  

권오철 기자는 유 소장의 부대를 따라 양평, 포천 등지를 답사했다. 권 기자는 제2신에서 북괴군이 후퇴하면서 자행한 학살현장을 전했다.

 

(○○전선에서 본사 특파원 권오철발 제2신) 6

유재흥 소장이 지휘하는 제○군단의 정예부대는 숨쉬울 사이도 없이 북진을 계속하고 있다. 공산괴뢰군은『서울에서 패퇴한 후로는 이렇다할 저항도 보이지 못할 정도로 패주 또 패주를 거듭할 뿐이고 투항하는 괴뢰군 장병의 수□는 격증하고 있으며 이들은 인도적인 처우에 감사하고 있다. 완전무장을 가춘 우리 국군은 기계화 부대를 선두로 유유히 진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괴뢰군의 장비는 거의 전무할 정도이고 다만 다발총 따위를 지니고 있을 따름이라 한다. 최전선에 가까이 이르면 이를수록 주민들이 흔드는 태극기의 헤아릴 수 없는 파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더욱 열렬한 환영에 부닥치곤 하였다. 어느 곳에서나 놈들은 량퇴 십여일을 앞두고 수많은 책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기자가 답사한 양평、포천 등지에서는 목불인견의 지옥을 연출하였던 것이다 늙은이 점은 부인 등 인류사상에서 일직이 찾아보지 못한 학살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조고만 부락에도 연못가라던가 산봉오리라던가 하는 곳에서는 의류를 벗겨놓고 두서너 사람씩 묵어놓고 총살한 시체가 늘비해 있었고 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평화를 반대하는 살인귀들인가를 이번에는 똑똑히 국민들의 뇌 속 깁이 삭이게 하였다 도로연변에는 산속기피 피난하였던 양민(良民)들이 열을 지어 따듯한 국군의 보호를 받아가며 그리운 집을 찾아 돌아오고 있었다. (동아일보 1950년 10월 9일자 2면)

 

북괴군도 10월 9일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한 것을 인정했다(동아일보 1950년 10월 11일자 1면). 서부전선의 미제1기갑사단은 10월 10일 백천을 탈환했다.

 

【미제1기갑사단사령부에서 12일 발 UP=대한통신·『제임스』특파원기】미군 제1기갑사단은 11일 이른 아침 2차에 걸친 공생괴뢰군의 돌격을 격퇴하고 38이북 4천 내지 8천 마일에 걸친 진지를 확보하였다. 전선으로부터의 보고에 의하면 공산괴뢰군은 소병력으로써 발광적 돌격을 가하여 왓으나 다대한 손해를 입고 격퇴되였다고 한다. 개성 서방 20리 지점의 백천과 기타 38선 근처의 여러 촌락이 10일 오후 탈환되였다. 백천시를 탈환한 부대들은 다량의 탄약을 가진 대전차포를 발견하였다. 공산괴뢰군은 포 1발도 쏘지 않고 포진지를 철거하였던 것이나 현재『유엔』군 전선은 대체로 서방으로는 38선 남방 백천과 개성 북방의 경성가도 상 즉 38선 북방 3천마일 지점 및 장단 북방 8천마일 지점을 연락하는 선이다. (동아일보 1950년 10월 14일자 1면) 7

 

미제1기갑사단 사령관 호바트 R 게이 소장은 11일 기자회견에서 “북한괴뢰군 중 상금 전투능력이 있는 병력은 약 2만5천명일 것”이라고 추산했다(동아일보 1950년 10월 13일자 1면). 8 북괴군이 남침 3개월 만에 10만 병력이 궤멸되어 불과 2만여명의 패잔병력이 38선 이북으로 도주한 것이다.

 

국군 제1군단의 3사단과 수도사단은 협동공격으로 원산탈환전을 벌였다. 10월 10일 미명하에 제1군단장은 “오늘 새벽 오전 6시30분에는 적어도 제2613부대의 2개 중대가 시내공장지대에 진출하여 있고 또 동시 동방의 적비행장도 아방의 수중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동아일보 1950년 10월 11일자 1면). 제1군 군단장은 김백일 준장이었다. 9

 

“한편 중부 산악지대로 북진 중이던 국군 제2군단(군단장 유재흥)에도 평양을 점령하라는 작명(작전명령)이 내렸다. 제2군단은 10월 6일에 38선을 돌파했었다. 제2군단에 배속된 제7사단의 선봉부대인 제8연대(연대장 김용주 중령)는 율리에 도달해 있었다. 8연대는 쉴 사이 없이 평양탈환전에 나섰다. 양인석 소령의 제1대대와 박관영 소령의 제3대대가 선봉으로 진격했다. 제7사단장 신상철 준장도 김용주 연대장과 함께 선두대열에 나섰다. 10월 19일 아침 대동강 상류에서 물을 건너 서평양에 돌입했다.” (한국전쟁종군기자편찬위원회, 한국전쟁종군기자, 한국언론자료간행회, 1987, 318쪽.)

 

  

  

Notes:

  1. 권오철(6·25 당시 편집부 기자), 50년대의 동아(상)-당시를 말하는 노기자 방담, 동우 1965년 12월호, 5~7쪽.

    9·28 수복 후에 서울에 와 보니까 신문사 시설이 엉망이 됐더군요. 한동안은 다옥동으로 이전을 해서 일을 봤었죠.

  2. 조병윤(6·25 당시 업무국원), 50년대의 동아(상)-당시를 말하는 노기자 방담, 동우 1965년 12월호, 5~7쪽.

    당시의 고생하던 일을 세세히 적어 놓으면 아마 책으로 수십 권은 될 겁니다. 9?28 수복 후에 서울에 와 보니 기계고 뭐고 하나도 남아 있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대성 ‘빌딩’에 들어가서 일을 봤었죠. 인쇄시설이고 뭐고 하나도 없는데서 신문을 제작하려니 그 고생이야 형언키가 어려웠어요. 조판을 해 가지고는 연판을 메고 사방으로 인쇄소를 돌아다니며 신문을 찍었습니다.

  3. 한국전쟁종군기자편찬위원회, 한국전쟁종군기자, 한국언론자료간행회, 1987, 304쪽.

    9월 6일부터 낙동강 전선을 박차고 총반격에 돌입한 국군과 유엔군은 9월 28일 수도 서울을 탈환하고 계속 적을 추격하여 북으로 38선을 향해 진격했다. 북괴군은 남침 3개월만에 10만 병력이 궤멸되어 불과 2만여명의 패잔병력이 38선 이북으로 도주했다. 한편 동해안을 따라 북상한 국군 제1군단(군단장 김백일 준장)의 제3사단(사단장 이종찬 준장)은 태백산맥 동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북진하고, 수도사단(사단장 송요찬 준장)은 태백산맥 서쪽 코스로 산안지대를 헤치고 진격해 나갔다.

    국군 제3사단 23연대 3대대(대대장 허형순 소령)가 선봉으로 북진하여 9월 30일에는 이미 38선에 도달해 있었다. 이 38선을 함부로 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져서 장병들은 ‘북괴군이 먼저 짓밟은 39선이 이제 무슨 소용이냐’고 진격명령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때, 미국측은 유엔군이 북진할 경우, 중공이나 소련이 참전할 것을 우려하였다. 그러나 유엔군으로서는 6월 27일과 7월 7일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및 10월 7일의 유엔총회 결의에 명확하게 규정된 바와 같이 38선을 돌파하는데 법적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침략자인 북한공산군을 격멸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결론지었다. 맥아더 원수는 10월 1일 북한공산군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유엔군에 참가한 여러 국가들은 북진에 찬성했다. 드디어 10월 2일 맥아더사령관은 유엔군의 38선 돌파를 명령하였다. 

  4. 이동욱(전 동아일보사 회장), 나의 6·25 체험기, 돌아오지 못한 언론인들(대한언론인회 편), 2003,158~167쪽.

    산책 중 편집부에서 일하던 권오철 기자를 우연히 만났는데 수표동의 조인상 씨 집에 동아일보 기자들이 많이 들르니까 거기로 나오면 이러저런 소식을 들을 수 있다고 하면서 그리로 오라고 했다.

  5. 동아일보 1950년 10월 7일자 1면, 북한의 정훈공작 중요, 유재흥 제○군단장 기자회견 담

    (○○기지에서 본사 권오철 특파원발 제1신)
    제○군단장 유재흥 소장은 작 6일 ○○기지에서 기자와 회견하고 다음과 같은 일문일답을 하였다.

    (문) 일반은 이 기회에 완전한 실지 회복이 될 것을 확신하고 또한 염원하고 있는데 견해 여하
    (답) 일반이 원하는대로 완전히 된다

    (문) 6일 상오 10시 현재 귀군단의 진격상황 여하
    (답) 한국군 제○사단 제○련대는 칠만오천키로왓트를 발전할 수 있는 구만리 발전소를 점령하였다 역시 동사단이 춘천 북방 륙키로 지점까지 진출하였으며 금명간에 화천도 함락할 것이다 이 방면 전투에서 거두운 전과는 포로 이백오십명 전차파괴 소총 지뢰 등 다수를 로 획하였다

    (문) 독안의 쥐격인 괴뢰군 소멸에 대한 귀하의 자신은
    (답) 자신만만하며 시간문제이다

    (문) 외전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중공 외상 주은래가 괴뢰군을 원조하겠다고 언명한 바 있는데 이것이 사실화된다면 전국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는가. 또한 이에 대한 귀군단의 대책여하
    (답) 문제는 이것이 사실화되느냐 아니냐가 문제인데 내 자신의 생각으로는 군수품 원조정도에 끝일 것이며 인적원조를 안하는 것이 중공자신을 위한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문) 광범한 탈환지역의 적극적인 정훈공작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계획은 수립되었는가
    (답) 오년동안 공산주의 탄압 밑에서 신음한 북한에 들어가게 되는 만큼 남한에서 실시하던 몇 배의 정훈공작을 전개할 것이며 제일선에 교육자 문화인 등도 광범히 인원을 동원하여 파견하겠다.

  6. 동아일보 1950년 10월 9일자 2면, 괴뢰군 저항 미약, 정예 부대 맹진격

    (○○전선에서 본사 특파원 권오철발 제2신) 유재흥 소장이 지휘하는 제○군단의 정예부대는 숨쉬울 사이도 없이 북진을 계속하고 있다 공산괴뢰군은『서울에서 패퇴한 후로는 이렇다할 저항도 보이지 못할 정도로 패주 또 패주를 거듭할 뿐이고 투항하는 괴뢰군 장병의 수□는 격증하고 있으며 이들에은 인도적인 처우에 감사하고 있다. 완전무장을 가춘 우리 국군은 기게화 부대를 선두로 유유히 진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괴뢰군의 장비는 거의 전무할 정도이고 다만 다발총 따위를 지니고 있을 따름이라 한다. 최전선에 가까히 이르면 이를수록 주민들이 흔드는 태극기의 헤아릴 수 없는 파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더욱 열렬한 환영에 부닥치곤 하였다. 어느 곳에서나 놈들은 량퇴 십여일을 앞두고 수많은 책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기자가 답사한 양평、포천 등지에서는 목불인견의 지옥을 연출하였던 것이다 늙은이 점은 부인 등 인류사상에서 일즉히 찻아보지 못한 학살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조고만 부람에도 연못가라던가 산봉오리라던가 하는 곳에서는 의류를 벗겨놓고 두서너 사람씩 묵어놓고 총살한 시체가 늘비해있었 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평화를 반대하는 살인귀들인가를 이번에는 똑똑이 국민들의 뇌속깁히 삭이게 하였다 도로연변에는 산속기피 피난하였던 량민(良民)들이 열을지어 따듯한 국군의 보호를 받아가며 그리운집을 찻아돌아오고 있었다

    포천같은곳에서는 우리국군이 탈환한지 불과20시간후인 7일 정오에 벌서 평화로운 자태를 회복하고 있었으며 문자그대로 폐허로화한 의정부의 주민들은 빈주먹이나마 얼골엔 명랑한빗을 띠우며 재건의 의욕에 가득차있는것 같다 비록 헐벗게 되었지만 적치하에서 신음하던 90여일의 지옥생활에 비하면 평온스럽고 민주주의적인 대한민국의 품안속에서 말을뻣고 생활을 즐기게 된것만이라도 무상의 행복이라고 이곳 주민들은 생각하고 있는것이었다 국군이 점시(占視)하면 곧뒤이어 경찰대가 진주하는까닭에 치안은 반석위에 놓여있었다
    용맹한 국군의 북진보는 그야말로 명명하였으며 아무런 거리킴없는 만만한 자신을 보이며 씩씩하게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평양으로 원산으로 아니 압록강변 백두산봉을 향하여 우리국군의 정예부대의 대열은 끊임없이 진격해 나갈것이다

  7. 동아일보 1950년 10월 14일자 1면, 미기갑사단, 사리원 육박(肉迫), 백천 등 촌락 다수 탈환

    【서울 12일 발 AFP=대한통신『유엔』군 종군특파원】미군 제1기갑사단은 금일 개성으로부터 사리원、평양에 이르는 도로상에서 약 1『키로』전진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주요도로상에서 진격중인려단(旅團)은 매우 강한 저항을 받었다 그러나 북한괴뢰군은 경무장을 하고 있으므로『유엔』군의 압력앞에는 그다지 오랜대항을 지속하지는 못할것이다 금천동방에서는다른 미군려단이 김천동방15키로지점 38이북15키로지점에 있는『유가동』에 아무런 저항도 받음이없이 도착하였다 그러나 동 려단은 김천남방 약1키로지점을 진격중인 다른부대의 측면을 엄호하기 위하여 그 전진을 정지하고있다 한편 영련방려단(英聯邦旅團)은 미군 제1기갑 사단좌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금일 적과 대치하게 되었다

    【미제1기갑사단사령부에서 12일 발 UP=대한통신·『제임스』특파원기】미군 제1기갑사단은 11일 이른아침 2차에걸친 공생괴뢰군의 돌격을 격퇴하고 38이북 4천내지8천예걸친 진지를 확보하였다 전선으로부터의 보고에 의하면 공산괴뢰군은 소병력으로써 발광적 돌격을 가하여왓으나 다대한 손해를 입고 격퇴되였다고 한다 개성 서방20리지점의 백천과 기타 38선근처의 여러촌락이 10일 오후 탈환되였다 백천시를 탈환한 부대들은 다량의 탄약을가진 대전차포를 발견하였다 공산괴뢰군은 포1발도 쏘지않고 포진지를 철거하였□이나 현재『유엔』군전선은 대체로 서방으로는 38선 남방 백천과 개성북방의 경성가도상 즉 38선 북방3천□지점 및 장단북방8천□지점을 연락하는 선이다

  8. 동아일보 1950년 10월 13일자 1면, 전 북한에 계엄령, 괴뢰집단소탕에 완벽, 제주도 지구는 10일부 해제, 평양점령도 목첩(目睫)

    미제1기갑사단『게』사령관 담
    국무회의의 의안을 거쳐 북위 삼십팔도 이북의 북한 전지역에 비상계엄이 10월 10일부터 선포되어 북한지역에 반거(蟠居)한 괴뢰집단의 무력적 요소를 완전히 소멸하고 원활 신속한치안의 회복을 기키로 되엇스며 7월 20일부로 공포한 계엄선포에 관한 건(件)중 제주도지구의 계엄은 10월10일로써 해제되엇다.
    [재한국 미1일기갑사단 사령부에서 11일 발 AP 대한통신『월리얌·G·보후』특파원 기] 미제1기갑사단 사령관『호바트 R 게이』소장은 11일 기자단회견석상에서 북한괴뢰군이 패배당하였으며『유엔』군이 북한괴뢰 정권 수도로 드러가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다음과 같이 말하었다.『유엔』군의 북한진격에 있어서의 제1단계는 극히 만족할만한 것이었다. 이 작전에는 미제1기갑사단만이 담당하였다. 그러나 명 12일에는 이 지구의 영국군 및 호주군이 행동개시할 것이다. 게이 장군 휘하 부대들은 3방면군으로 북한에 진격중이다. 동(同)장군은 북한괴뢰군 중 상금 전투능력이 있는 병력은 약 2만5천명일 것이라고 추산하였다.

  9. 동아일보 1950년 10월 11일자 1면

     엔군(軍) 유 38선 돌파, 북한괴뢰도 인정
    【동경 8일 발 공동=대한통신】9일 동경에서 접수한 평양방송에 의하면 북한괴뢰 당국은 삼팔도선을 넘어서 북진한 유엔군에 대하여 반격을 가하고 있다고 발표하야 유엔군의 삼팔선 월경을 처음으로 인정하였다.
     
    미 1 기갑사단 백천 탈환, 원산탈환, 원산시에 돌입, 비행장도 완전점령, 제2613부대의 수훈
    【통천10일 베니홉UP특파원발=대한통신】한국군 제2613부대 선견부대는 10일 새벽 북한괴뢰군의 완강한 저항을 배제하고 동해안의 요충원산에 돌입하엿다

    【통천일발UP=대한통신】한국군 제2613부대의 일부는 10일 새벽 드디어 원산에 돌입하엿는데 이에 대하여 한국 제1군단 사령관은 오늘  새벽 오전 6시30분에는 적어도 제2613부대의 2개중대가 시내공장지대에 진출하여잇고 또 동시 동방의 적비행장도 아방의 수중에 도라을 것이다』라고 말하엿다

      원산돌입을 확인
    【통천10일 베니홉UP특파원발=대한통신】제2613부대의 전위부대는 10일 미명 적의 완강한 저항을 물리치고 동해안의 요항인 원산에 돌입하었다 한국군 제1군 단장은 금조(今朝)『제2613부대의적어도 3개 중대가 이미 원산에 돌입하여 있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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