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로당의 지령에 따라 김지회 소위 주동으로 반란을 일으킨 여수주둔 14연대는 4시간만에 여수를 점령한 데 이어 순천 · 광양 · 벌교 · 보성 일대를 휩쓸며 군경 좌익인사 및 그 가족을 무차별 학살했다. 군경합동작전으로 27일까지 반란군은 대부분 포위섬멸되고 패잔병은 지리산으로 도망하여 사건은 일단락 되었으나 사망자가 총 3400명, 부상 2000명으로 그 상처는 의외로 컸다.” (동아의 지면반세기, 동아일보사, 1970)
동아일보 1948년 10월 22일자 2면, 일부 육군부대반란소요, 공산계열과 극우분자도 책동, 반군이 여수、순천 점령, 양민과 경관을 학살, 21일 이항(以降) 점차로 진정
광주남원선이남에 반도를포위소탕
이국방장관 전투경과발표
가지가지 폭도만행
가증 14연대장등흉모
공산계열과 일부극우(極右)분자들의 책동으로 국방부일부육군부대가 주동이되여 전남(全南)지방에 정부에대한 반란이 이러나 수많은 경관과 량민을 살상한 천인이 공노할 일대불상사가 이러나 전남(全南)의 려수(麗水)순천(順天)일대는 수라장으로 화하였는데 정부의 신속한 조치로 21일 현재는 거이 반군(叛軍)은 피동적으로 세력이 분렬되여 치안은 착착 수습되여 가고있다한다
이사건 전모에 관하여 지난 21일 국방장관 이범석(李範석)씨는 기자단과의 회견석상에서 다음과같이 발표하였다
전남(全南)여수(麗水)에는 국군(國軍)제14연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지난20일 새벽2시경 공산주의게렬의오랫동안의 책동과 음모로서 반란이 발생하였다 처음에 약40명에 가까운 사병(士兵)이 무기고를 점령하고 교묘한 선동과 위협으로 동련대의 일부병사를 충동시켜 심야를 이용하여 동련대장교들 대부분을 살해하고 곳여수에있는 치안기관인 철도경찰서와 지방경찰서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동일 상오10시경에는 여수를 거의 점령하고 그지방의 공산주의 청년을 모아 무기를 배급하고 또 민중을 유혹하여 일대세력을 만들어 량민을 학살하는등 가진죄상을 쥐게하였든것이다
그리고 일부분은 철도시설을 점령하고 순천(順天)으로 가는 학생통학열차약6량(輛)에 탑승하고 순천으로 돌진하였는데 순천역에서 철경과 충돌한다음 지방경찰서를 습격하였다 이것이 지난20일 하로동안의 경과이다 그런대 이폭동의 성질을 보건데 군정이양전인 수삭전에 공산주의자가 극우(極右)의 일부 정객들과 결탁하여 반국가직반란을 이르키랴는 음모가 있었다는것을 나는 미리알고 있었다 그런데 14련대장인 오동기(吳東起)는 서울에 있을적에 교묘한 수단으로 소령(少領)이 되며 14연대장으로 여수에 부임하게되자 동련대하사관훈련의 기회를 포착하여 하사관들을 선동하고 일방으로는 극우전영 혹은 해외국내에서 직접으로 연락을 취하여 노서아(露西亞)10월혁명일을 기하여 전국적인 반란을 게획하였든것이다 이것이 정권이앙받기전 20일경에 사전에 알고 전기오(吳)일미를 급속검거하였다
그러자 그의 연루자들은 공포심을 느끼게 되었는데 상부의 조치로 모종의 임무를주어 연루가 많이 끼여있는 일대대(大隊))를 분리시켜 다른대로 파견하게되자 출발직전인 지난20일 피동적으로 주동이되여 이와같이 반란을 이르키게 된것이다
그런데 폭도들은 가진행페를하여 학살 약탈 방화등을 감행하였는데 군(軍)으로서는 우선광주(光州)로부터 3개중대를 순천에 증원시키었는데 시간적거리와 또열차관개로 지체가되여 순천역시 지난20일 밤10시10분경 현재로 반군에게 점령당하고 접전중에 있다는 정보를 들었나 그보고에 의하면 순천을 대부분 점령한 받도(反徒)들은 공산청년도배들을 규합하여 약2천여명이 되는데 그병력을 두길로나누어 하나는 전북(全北)남원(南原)으로 또하나는 광주(光州)로 향하였나고 하는데 군(軍)에서는 지난 20일 하오1시 비행기로 전방지휘군(前方指揮軍)즉참모(參謀)진을 광주에 수송하여 현세를 판단하여 시간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사태진압에 극력힘을 쓰고있나 그런데 그들중에서 일부는 돌아왔는데 그정보에 의하면 전방(前方)에서는사기왕성하나하며 일개대대를 남원으로 이개대대를 군산(群山)으로부터 각각광주(光州)로 보내였다 이도중에서 격전이 전게되며 반군들을 분쇄하고 그주력은 지리(支離分裂)하여 방향을꾸어 지이산(智異山)을 전진할랴고 하였다
그러자 군에서는 미리 이책략(策略)을 알고 산악지대에 강력한 병력을 배치하고 남원과 광주이남의 폭도를 서남해안으로 압박하는 동시에 모처로부터 강력한 병력이 가담하여 적극 진압하기로 되어있다 그럼으로 미구에 순천여수간의 폭도의 련락은 끈킬것이고 박멸될것이며 치안은 회복될것이다
폭도들의 좌상은 수짜직으로는 확실이 알길이 없으나 최근에 부임한 연대장이하 수십명의 장교를 학살하고 순천에서는 반수이상의 경찰을 살상하였고 일부의 량민과 수많은 청년을 사로잡어 순천시내 순천회관(順天會?)에서는 인민재판을 열고 가진 악행과 만행을 감행하고 건물을 파괘방화하고 강간략탈을 제멋대로 하여 죄없는 백성들을 울리고있다 여수도 순천과 같은 도탄에 민중을 모타듯코있다고 상?된다 이 신인(神人)이 공노날 공산주의도당의 죄상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여기에 극우(極右)진영의 시대시기를 모르는 자기사욕만 채울랴는 흉게에는 또한 분함을 느끼지않을수 없다
자유와 평화를 파괴하고 폭동으로서 정치적기도를하는데 성공한직은 전무후무(前無後無)할 일이다 이죄상이 바위날에 전부 폭로될때에는 우리국민들은 더욱이 그죄상에 대하여 분게할것이다 정부로서는 국가민족을 파괴하는 폭동은 결코 용인치 않을것이다 그러나 이시태는 점점 범위가 축소되고 진압은 곧될것으로 국민들은 안심하여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바이다
군으로서 이와같은 불상사가 생겻다는것은 책임자로서나 건군의 전도를 위해서나 대단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군에서 이러난 폭도이지만 군에서 적극적으로 진압하고 있음에 폭도의수는 극히 적은것이고 군의대부분은 이에대한 자기의 책임을 용감하게 하고 있다는것을 볼때 우리의 국군을 아직 미동(微動)도 하지않고 있다는것을 증명하고 있는것이다
그런데 일선경찰은 적은무기와 적은탄약으로서 자기의 직책을 다한데 대하여 감사의뜻을 표하는 동시에 폭도들에게 살해당한분들에게 심심한애도의 말슴을을리는 바이다 량민들은 재산을 빼앗기고 또 능욕(凌辱)을 당한데 대하여 정의(正義)에 반하는 행동은 결코해서는 않된다는것을 절실히 느끼었을 것이다 이와같은 사태를 미연방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또단시일내에 철저히 숙청할것을 자신한바이니 국민들은 시비를 잘판단하여 이와같은 악선전에 이용당하지 말기를 재강조하는바이다
동아일보 1948년 10월 22일자 2면, 일부 육군부대반란소요, 공산계열과 극우분자도 책동, 반군이 여수、순천 점령, 양민과 경관을 학살, 21일 이항(以降) 점차로 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