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따라 제1차로 1946년 3월 20일부터 미소공동위원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1차 회의는 5월 6일에 양측 의견의 근본적 대립으로 결렬되고, 익 1947년 5월 25일에 재개(제2차)되었으나 그것도 결렬되고 말았다.” (동아의 지면반세기, 동아일보사, 1970)
“미국에 반대하는 진영은 정당 사회단체를 망라해 2월8일 ‘민주주의민족전선’을 결성하고 대중 조직을 확대해나갔다. 이에 따라 언론계에도 ‘출판노조’가 생기고 각 업종 노조를 망라한 ‘전평(全評·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도 생겼다. 남북에 진주한 미국과 소련 양군의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연쇄회담은 별다른 성과 없이 결렬했고 남쪽 여러 정파간 알력은 갈수록 혼돈상태로 빠져들었다. 우익 내부의 노선 차이도 뚜렷해져 이승만의 ‘자율정부 즉시 수립’, 김구의 ‘반탁 통일’이 대립하는 가운데 김규식이 주도하는 ‘좌우 합작’이 제3의 길을 제시하고 나섰다.” (동아일보 80년사,동아일보사,2000)
동아일보 1946년 3월 21일자 1면,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20일부터 덕수궁석조전에서 개막
조선역사상 신기원을짓는 출발의날 3월 20일 하오1시에 제1차 미·소공동회담은 드디어 중□기픈 덕수 고관에서 막을 올렷다
2차대전의 진보적성격에 상부할 약소민족 완전해방을 실현함으로써 수립될 항구적세계평화의 열쇠를쥔 미·소양대강국 대표는 과연 금번의 역사적회담에서 이미 약속한 바와같은 위대한 과업인 조선의 자주독립실현의 목적을 달성할것인가 조선정계의 관심과 세계의 시청은 한말의 복잡다단한 역사가짐기고잠긴 조전(造殿)에 집중되고 있다
동아일보 1946년 3월 21일자 1면,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20일부터 덕수궁석조전에서 개막
동아일보 1946년 3월 21일자 1면
조선사상의 신기원
독립국가로 회복시키는날
하—지중장 개회사
스티코푸장군、공동위원제위급본개회식에 참관하시는 여러분!나는 큰 질거움과 기대를 가지고 모스코 삼상회의에서 결정된 조항을 이행하기 위하야 조선서울에서 개최되는 미소공동위원회개회식에 소련대표를 환영합니다 오늘은 조선역사상 중대한 날입니다 이날이야말로 전조선민족이 조선국가의 장래를 위하야 큰희망을 가지고 기다려오든 그날이요 또 조선역사상 신기원의 출발일로 장래에도 경축할 그날이올시다 전세계와 조선인의 안목이 이자리에서되는우리의 심의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세계의 2대강국이 압박과 학정을 타파하고 어든 그 승리를 선용하야 원만한 노력을 하느냐 또한 불행하고 오래압박을 바든 나라를 자유열국중의 1개독립자주국으로 회복시킬 능력이 있느냐는 이 공동위원회의 결과가 증명할것입니다 이 위원회가 성공하야 성과를 거두면 이것은 조선의 장내와 세계의 평화행복에 항구한 결과를 남길것입니다 미국의 대표자의 1인으로 양국의 공동노력은 이회의에 상정된 정치、경제、행정에 관한 모든 조선문제를 우의적으로 공정하게 해결할수 있으리라고 나는 나의 희망과 자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스티코푸장군!나는 거듭 각하와 각하의 고명한 동료대표제위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조선를 원조하려는 우리양국대표간의 관계와 협력에있어 나와 나의 동료미국대표들은 자신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읍니다 인제 공동위원회의 미국측대표인 아놀|드장군□든든씨、테이열씨、뿌트대좌급 뿌리톤대좌를 소개해들입니다 사진은 하지중장
동아일보 1946년 3월 21일자 1면
비공개로 본회담에
미소양국대표 개회사마치고
대비되여있는 석조전경실에는 하오 1시5분에 아놀드소장이하 5명의 미국대표의 스티코프중장이하5명의 소련대표가 착석한후 회담의 사회자인 하|지중장으로부터 세계의 2대강국인 미소양국이 압박과 학정을타파하고 대전승리의 선용을 증명할 회담이라는 별항과같은 의의기푼 개회사가 잇은후(이묘묵씨 국어로 역(譯))스티코포장군의 금번회담에서 일제의 잔재와 반민주적분자의 숙청을 단행할수잇는 조선의 정권을 수립할 구체적내용을 설파한 연설이 있엇고(함남출생인 조선인강원소좌)가 국어통역) 양군대표 소개인사가 있은다음 개회를 마치고 비공개로 본회담에 드러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