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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46년 8월 20일자 2면, 마라손개선 수기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대회 개선기록은 해방 후 세계제패 1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1946년 8월 20일자부터 동아일보에 4차례 연재됐다. 손 선수가 8월 9일 10주년 기념일에 동아일보 주최 ‘10주년 회상의 저녁’에 참석한 뒤 마라톤선수 권태하 집에서 밤새워 동아일보 기자에게 털어놓아 기록하도록 한 수기였다. 이 자리에는 남승룡 선수와 김은배 선수도 있었다.      

  수기에 따르면 손 선수는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제패 후 매년 8월 9일에 3위를 차지한 남승룡 선수와 밥을 나눠먹으며 이날을 추억했다.

 

손 선수 등이 베를린에 도착한 것은 1936년 6월 18일.

“백림에 닷기가 무섭게 모(苗)부은듯한 구라파 각국에서는 이른바 모략전(謀略戰)으로 대회전부터 초청경기를 이 나라 저 나라 가하는데 어쩌자고 경기중에 가장 장거리로서 힘과 시간을 만히 요하는 마라손에 우리들을 너는 어느나라 너는 어느 나라로 가서 초대경기를 하고 오라는지 모르겠다. 반듯이 그러치야안켓지만 10초(묘)에 뛰는 백미들에 불행히 한번 부상을 한다면 그보다 4천백70여배나 되는 마라손이라면 부상할 □려가 어디로 보든지 더 만흘것이 사실인 것□은 잘 알 수있고 정작대회를 위하야 이러한 특수종목선수를 소중하게 해줄 감독(좌등)으로서 차 소위 구라파각국의 모략에 빠젓는지 그러치 않으면 우리들을 골리려는 모략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사코 거절햇더니 □□아니□는다고 일본인선수 무명□□、영목(鈴木)과 우리와 평소의 연습을 달리해준다。 이럴수록 우리들은 더욱 굿게 결심한 바 있엇다。 때로 눈물이 떠러질 때 들킬가바서 닥그려면 유니폼에 입장기부친 것이 더욱이가 □리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었다。 김은배、권태하 두 선배가 4년 전 미국올림픽 때 그놈『쓰다』(진전(津田))란 선수꼬임에 빠젓든 것과 또 이번 올림픽에『쓰다』를 마라손감독으로 내정한 것을 4년전에 속앗든 권태하 선배가 칙면으로 구지 반대해서 신출백이『사도』(좌등(佐藤))가 감독이 되었다는 것도 □어 알었기때문에 우리는 선배의 경험을 거울 삼었든 것이다。 그래서 우리 고집을 세우기에 둘의 결의는 구덧든 것이다.”(제1회)

 

  같은 마라톤선수인 권태하와 양정고 출신 정상희가 올림픽촌을 찾아와 손기정과 남승룡을 격려했다.

 

“공연히 저의들(일본선수)은 다른 연습하는데도 머나먼『스타디엄』까지 끌고가기가 일수요 무슨『미쓰이』물산이니 뭐니 초대가 있다고 밤늣게 끌기가가 일수이엇다。 가봣자 고추장만 못하고 마눌만도 못할 뿐아니라 우리는 꼭 어더 먹으면 배탈이 낫다。 그 후로는 일체 초대에 응하지안코 단둘이서 쓸쓸하 마조안저서 어째튼 기어코 우승해야겟다고 별를 뿐이엇다。 이것은 저혀외숙하고잇는 두선배(권태하、정상희 양씨를 가르침)가 50여리가 되는 올림픽촌을 자조차저와 격려하고 참고를준데 버틸힘을 어덧다 ”(제2회)

 

  손기정은 마라톤에서 있는 힘을 다해 죽어라 달렸다. 오직 문을 향해 남은 힘을 다 쏟았다. 손기정은 시상대에서 “천하를 찾은 듯 원수를 물리친 듯 첫째로 내 고향 어렸을 적 서울서 처음으로 단축마라톤에 우승하든 그 생각 모교(양정중학) 고국『모스크바』에서부터 정면으로 폭발된 적개심 등등이 머리를 몇 바퀴씩 도는지 골이 띵하였다”고 회상했다.

 

“『예라!이러다가는 죽도 밥도 아니되겟다 그저 잇는 힘 다달려 선두『자바라』와 함께 억개를 해보면 내 잠재력과 대조되겠지』 이러케 이를 악물고 바로 압희 영국선수『하퍼』를 딸아 제치려니 그는 나보다 나이 더되는 노련한 영국선수이엇는데 날더러 너무 속력을 내지말라고 형용한다 나의 납은 기운을 모르는 동정의 표정이엇다 그러나 선두를 밧작 딸코 본 뒤라야 길고 짤븐 것을 짐작하리라고 생각되어 결국 딸앗다。 막상 뒤딸고보니 재치지안코는 안될 것이 선득 생각킨다 그 뒤만 딸다가는 우승을한댓자 기록이나□것을 짐작햇기 때문이다 내 뒤야 어찌되엇든 나는 그저 잇는힘 다하야 달릴 뿐이다 마라손 문이 보인다 죽어라하고 달렷다 무아무중 오직 문을 향해 남은 힘을 다 쏘닷다 나보다 2분3초9 뒤가『하퍼』요 바로 약 1백미돌 차도 18초 9뒤가 우리 남군이엇다。감남입 월게관을 쓰고 단상 놉직이 서니 천하를 차즌 듯 원수를 물리친 듯 첫재론 내 고향 어렷슬 적 서울서 처음으로 단축마라손에 우승하든 그 생각 모교(양정중학) 고국『모스쿠바』에서부터 정면으로 폭발된 적개심 등등이 머리를 몃바퀴식 도는지 골이 띵하엿다 먼저 말한 두 선배만은 반갑게 와서 악수를 한다 ”(제3회)

 

  손기정이 상해(上海)부두에 내린 것은 10월 3일. 형사대가 와서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와 연락이 있느냐  없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마침 인도(印度)교육자대회에 가는 길에 들른 이화여자전문 김활란(金活蘭) 교장이 조심하라고 대충 귀뜸해 알았다. 일본 장기(長畸))항구에서는 형사대가 와서 손기정 일행과 한배를 탄(대만) 장(張)선수만 몸수색을 당한다. 손기정은 “올림픽선수는 세계 각국이 국빈대우를 하는데 이것이 개선의 첫인사”라고 토로했다.

 

“뛰라거니 못뛴다거니 말끄테 감독의 말이란 것이 소위 우승햇다고 하는 선수들이 응하지 않으면 일본으로 더리고가지 안는다고 호령호령이다 그럼 우리는 마라손으로『시베리아』를 경유해서 조선에 가겟노라고까지 항쟁하면서 나라없는 설음을 알뜰히 늣겻다 이만하면 당시의 비통을 짐작하리라. 그 다음부터는 입맛이 쓰고 궁금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엿다 10월 3일 상해(上海)부두에 나리니 형사대가 와서 동아일보(東亞日報)와 중앙일보와의 련락이 잇느냐  없느냐고 뭇는다 자세히 몰라 속태우는 터에 마침 인도(印度)교육자대회에 가시는 길에 들른 이화녀자전문 교장 김활란(金活蘭)씨가 극히 조심하라고 대총 귀뜸을 전해주어 알엇다.”(제4회)

 

손기정 선수에게 마라톤 세계제패 후 기간은 “길은 듯 짧은 듯 오직 감개가 무량할 뿐”이었다.

 

동아일보 1946년 8월 20일자 2면 

마라손개선 수기
기자주=이글은 손선수가 10년전 우승하든 바로 그날(8월9일)밤에 해방후 처음맛는 □날이라고해서 남승룡(南昇龍)선수와 함께 선배 권태하(權泰夏)씨 집에서 역시 선배 김은배(金思培)씨와 기자가 밤새워가며 당시의 감격과 전후좌우 쓰라린 눈치속에서 승리를 엇고 입이 있으되 말못하고 쓸쓸히 개선(凱旋)한 개선기를 10년이 지난 오늘에 발표하는것이다

10년전 눈물겨운 가지 가지 설웁든 회상
① 손기정
기념일마다 감격과 눈물
10년이라면 나에겐 퍽이나 길다. 장가를 들엇섯고 자식들이 생겻고 또 상처를 하였으니 어찌 길지않은가. 그러나 이달이 날 바로 마라손을 뛰든 날이거니 하고 더구나 당시의〃레코드〃를 들어가며 이밤을 지새우니 감격과 흥분이 새롭기 짝이없다. 엇그제런듯 세월은 10년이 지낫으되 맘은 곳 백림(伯林)을 가고십고 머리에는 그 올림피아드가 왓다갓다한다
벙어리로 등신으로 귀국한이래 해마다 이 날이면 그래도 가치뛰든 남승룡군 하구만은 소금밥을 나누어가며 추억을 하기 아홉번이엇는데 금년이야말로 입을 버리니 감격과 흥분의 눈물이 압흘가리워 두서가 없어진다.

『싸인은 우리글로』
독일 백림에 닷기는、대회 달 반 가령 전인 6월 18일이엇는대 이곳까지 가는 도중에 벌서 일본인 감독의 싹수가 틀린 것을 알고 밧작 정신차렷다。 하기야 글쓰기가 쉬운 탓도 잇겠지만 나는 유독하 〃싸인〃달라는 □공격을 바들때마다〃손기정〃이라고 우리 국문으로 써왓지만 소련〃모스쿠바〃에 우리가 밤중에 다엇는대 소련측에서 절대로 밤중의 하차는 허락하지 안허 부득이 그 이튼날 밝기를 기다렷으나 정거하고 잇는 차간의 밤이란 잠이 오도안코 배는 곱하죽겠는대 이튼날 기차식당에서 저의끼리 먹는 요리내음새에 배곱하 죽겟다고 한마디햇더니『구스구스』하려면 가라고『모리다』삼전수신(森田秀信)란 감독이 □□이 호령을 한다。우리들은 어더먹으러 가는 길이 아니오 마라손 뛰로 가는 길이니 □라!빌어먹을 것하고 꾹 참엇다。

일인(日人)모략에 필승결의
백림에 닷기가 무섭게 모(苗)부은듯한 구라파 각국에서는 이른바 모략전(謀略戰)으로 대회전부터 초청경기를 이 나라 저 나라 가하는데 어쩌자고 경기중에 가장 장거리로서 힘과 시간을 만히 요하는 마라손에 우리들을 너는 어느나라 너는 어느 나라로 가서 초대경기를 하고 오라는지 모르겠다. 반듯이 그러치야안켓지만 10초(묘)에 뛰는 백미들에 불행히 한번 부상을 한다면 그보다 4천백70여배나 되는 마라손이라면 부상할 □려가 어디로 보든지 더 만흘것이 사실인 것□은 잘 알 수있고 정작대회를 위하야 이러한 특수종목선수를 소중하게 해줄 감독(좌등)으로서 차 소위 구라파각국의 모략에 빠젓는지 그러치 않으면 우리들을 골리려는 모략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사코 거절햇더니 □□아니□는다고 일본인선수 무명□□、영목(鈴木)과 우리와 평소의 연습을 달리해준다。 이럴수록 우리들은 더욱 굿게 결심한 바 있엇다。 때로 눈물이 떠러질 때 들킬가바서 닥그려면 유니폼에 입장기부친 것이 더욱이가 □리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었다。 김은배、권태하 두 선배가 4년 전 미국올림픽 때 그놈『쓰다』(진전(津田))란 선수꼬임에 빠젓든 것과 또 이번 올림픽에『쓰다』를 마라손감독으로 내정한 것을 4년전에 속앗든 권태하 선배가 칙면으로 구지 반대해서 신출백이『사도』(좌등(佐藤))가 감독이 되었다는 것도 □어 알었기때문에 우리는 선배의 경험을 거울 삼었든 것이다。 그래서 우리 고집을 세우기에 둘의 결의는 구덧든 것이다

 

동아일보 1946년 8월 21일자 2면

선배의 격려에 투혼획득
 졸리다못해 그럼 이번의 강적이오 4년전에 우승한 남아메리카 아르잰틴선수『자바라』와『올리버』와 7월 7、8일경인데 함께 20킬로(마라손의 반가량)만 뛰어달라는 초청이 전기선수의 마라손 코스 안내역인 독일신문기자를 통하야 들어왓다。 이것이 우승의 전초전(前哨戰)이라고해서 각국 기자는 어마어마하게 자동차로 따른다。 이것이 각각 자기나라 선수에게 작전상 참고지식을 너허줄 정찰전이엇든 모양이다。 나는 처음부터 실흔 것을 나가서그턴지『컨디순』이 조치안허서 선두『올리버』보다 약 50메들 떠러젓더니 내 뒤의 남군이 적개심에 타올라서 압선수를 밧작 딸라가 결국 이겻다。
그랫다고 약이 올라 그랫는지 때마침 비는 나리는데 50리나 떠러저 있는 올림픽촌에서 우리옷을 실코왓든 독일기자의 자동차가 저의 선수만 태워가지고 다라나려 한다。 그래 남군이 용감히 대들어 무례하기 짝이 없다고 따려주엇더니 이튼날 아침신문에 보니까 엄뜬『스스끼』(령목(鈴木))선수가 첫재를햇다고 썻다 공연히 저의들(일본선수)은 다른 연습하는데도 머나먼『스타디엄』까지 끌고가기가 일수요 무슨『미쓰이』물산이니 뭐니 초대가 있다고 밤늣게 끌기가가 일수이엇다。 가봣자 고추장만 못하고 마눌만도 못할 뿐아니라 우리는 꼭 어더 먹으면 배탈이 낫다。 그 후로는 일체 초대에 응하지안코 단둘이서 쓸쓸하 마조안저서 어째튼 기어코 우승해야겟다고 별를 뿐이엇다。 이것은 저혀외숙하고잇는 두선배(권태하、정상희 양씨를 가르침)가 50여리가 되는 올림픽촌을 자조차저와 격려하고 참고를준데 버틸힘을 어덧다

동포의 면회까지 방해
농구(籠球)에 축구(蹴球)에 또 권투(拳鬪)에도 우리 동포선수가 잇건만 만나고 시퍼도 서로 못맛나는 처지와 사정이엇다 바쁘기도 하겟지만 일본대표로서 선수진의 총무 이상백(李想白)씨 조차 차저갈 자유도 없엇고 차저주지도 않엇다 오직 전기 두 선배만이 잇다금 와서 격려해주다가 어떠케 새어낫는지 무슨 이유인지 두 선배의 올림픽촌 통행증이 빼앗기게 되엇다 그 후로는 만리타국에서 형을 일흔듯 정말 더 쓸쓸하기 쫘이 없엇다 (게속)

 

동아일보 1946년 8월 23일자 2면

결사적으로 세계제패
 마라손날이다!8월9일(1936년) 오후 세시 2분이다. 28개국의 50명 선수가운데 우리들 나이 어린 것이 서 잇다. 출발선이다 세명씩 출장한 나라는 우리들에『시호아기』(염포(鹽飽))를 석근 박게는 제바닥 독일과 핀랜드국 뿐이오, 한나라 2명씩 출전이 17나라, 한명씩이 8개국이다. 출발이다
우리는 중간찜에서 다름질한다『자바라』선수가 훨신 압섯다 우리는 차츰 뒤를 딸라 가는 한두명씩 제처서 이윽고 선두가까히 딸른다 그러케 떡먹드시 애원하다시피 일러두고 부탁한 이번 마라손 코스 중에 가장 난 코스인『삐스막언덕』에 응원의 개미색기조차 보이지 안는다 나는 이 고개를 올라갈때 내 시속(時速)과 내발뜀 뛰는 것을 귀뜸해주어야 내 힘을 조절할 수 있엇기 때문이다 아무도 보이지 안는다 참말 속이 안타까읍다 힘을 너무 내자니 압길이 아득하고 또는 선두의 역량이 얼마나 지첫는지 알배 길이 없다
『예라!이러다가는 죽도 밥도 아니되겟다 그저 잇는 힘 다달려 선두『자바라』와 함께 억개를 해보면 내 잠재력과 대조되겠지』
이러케 이를 악물고 바로 압희 영국선수『하퍼』를 딸아 제치려니 그는 나보다 나이 더되는 노련한 영국선수이엇는데 날더러 너무 속력을 내지말라고 형용한다 나의 납은 기운을 모르는 동정의 표정이엇다 그러나 선두를 밧작 딸코 본 뒤라야 길고 짤븐 것을 짐작하리라고 생각되어 결국 딸앗다。 막상 뒤딸고보니 재치지안코는 안될 것이 선득 생각킨다 그 뒤만 딸다가는 우승을한댓자 기록이나□것을 짐작햇기 때문이다 내 뒤야 어찌되엇든 나는 그저 잇는힘 다하야 달릴 뿐이다 마라손 문이 보인다 죽어라하고 달렷다 무아무중 오직 문을 향해 남은 힘을 다 쏘닷다 나보다 2분3초9 뒤가『하퍼』요 바로 약 1백미돌 차도 18초 9뒤가 우리 남군이엇다。

동포 우승에 흔희 작약(欣喜雀躍)
감남입 월게관을 쓰고 단상 놉직이 서니 천하를 차즌 듯 원수를 물리친 듯 첫재론 내 고향 어렷슬 적 서울서 처음으로 단축마라손에 우승하든 그 생각 모교(양정중학) 고국『모스쿠바』에서부터 정면으로 폭발된 적개심 등등이 머리를 몃바퀴식 도는지 골이 띵하엿다 먼저 말한 두 선배만은 반갑게 와서 악수를 한다
우리의 의사(義士) 고 안중근(安重根)선생의 사촌된다는 안공근(安恭根)선생이 차저주어 그날 저녁은 권선배와 함께 콩나몰국 두에부찌게해서 우승한 첫 잔채를 베□었으며 안 선생은 내가 독일온 지 20년에 인제 비로소 내로라고 기운을 어덧소 내살림 어려워 별 수가 없으되 우리『코리아도 즉지 안엇구려』하면서 그날 밤으로 선생은 열광한 남어지에 그 길로 백림방송국을 찻어가 지금 마라손에 우승한 선수는『째팬』이 아니라『서울·코리아』손선수라 웨처노아 당장 방송이 전파되엇다

승리는 햇건만
이때문인지 비분의 혈루뿐
독일 잇는 일본인들은 두 패로 갈려저서 하나는 조선청년이 일본을 위해서 20여년의 숙망을 성취햇으니 조선인을 재인식하고 감사해야 한다고 하며 하나는『코리아』가 이겻다고 하는데 □조하 날뛰냐는 등의 말이 귀에 전해온다
사도(좌등)감독에 어뗀 기자가 우승한 감상을 무르니까 그는 우승해서 기쁘기커냥은 손 남 두 선수 고집에는 아주 주먹마즌 감투가 되었다고 말하였다. 이겨도 욕이요 저도 욕을 먹으니 부모 없는 자식에 비할가 나라 없는 설움을 뼈속 사못치게 늣겻다 선배와 조상을 원광하며 우리들은 마조잡고 나라 없는 격분에 제절로 실컨을 헛□(게속)

 

동아일보 1946년 8월 27일자 4면

목적달성코 귀국항로
우승은 하고나니 맥도 풀리거니와 고국이 더욱 그리워젓다 김치 □둑이 음식 생각도 난다 도라가기 일각이 여삼추이었만 일본군이 여비보□을 어드렴인지 또다시 나에게는『덴마크』의 서울『코펜하겐』을 가서 마라손 모범경주를 하라고하며 남군에게는『프랭크포르트』로 원정을 가게스리 우리들을 갈러놋는다 이찜 처지가 되고보니 팔려다니는 곡마단의 □갓다 좌우간 우승한 뒤니 구경삼아 떠낫다『코펜하겐』운동장은 삼백미들 일주의 코스인데 나더러 마라손을 뛰라고 한다 올림픽 우승때 나는 발이 퉁퉁부어서 죽엇으면 죽었지 더 못뛰겟다고 항거하엿더니 그럼 1만메들이라도 뛰라고까지 지긋지긋 복가댄다 가가(加賀)라는 감독과 주먹질 싸움이다 남선수와 불국 파리(巴里)에서 함께 다시 맛나니 고국 도라간 것처럼 그러케도 반가운지 서루가 부동켜않고 실컨 울었다
뛰라거니 못뛴다거니 말끄테 감독의 말이란 것이 소위 우승햇다고 하는 선수들이 응하지 않으면 일본으로 더리고가지 안는다고 호령호령이다 그럼 우리는 마라손으로『시베리아』를 경유해서 조선에 가겟노라고까지 항쟁하면서 나라없는 설음을 알뜰히 늣겻다 이만하면 당시의 비통을 짐작하리라

개선인사는 신변수색
그 다음부터는 입맛이 쓰고 궁금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엿다 10월 3일 상해(上海)부두에 나리니 형사대가 와서 동아일보(東亞日報)와 중앙일보와의 련락이 잇느냐  없느냐고 뭇는다 자세히 몰라 속태우는 터에 마침 인도(印度)교육자대회에 가시는 길에 들른 이화녀자전문 교장 김활란(金活蘭)씨가 극히 조심하라고 대총 귀뜸을 전해주어 알엇다 인제는 정신밧작 차려야겟다 나가사끼(장기(長畸))항구에 닷기 전에 모교 황(黃)선생에게 동경으로 곳좀 와달라고 무선전보를 노코 부두에 나리니 형사대가 와서 우리들과 한배를 탄(대만) 장(張)선수만 유독이 몸수색을 한다 올림픽선수는 세게 각국이 국빈대우를 하는데 이것이 개선의 첫인사다 어느 듯 지나간 10년 길은 듯 짧은 듯 오직 감개가 무량할 뿐이다(끝)

 

 

4 Comm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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