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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년 만에 돌아오는 육십 간지에 따라 그 이름을 가진 해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신년호 기획은 일제시기 시작됐다.

 

  해방 후 이 같은 첫 기획은 1950년 경인년의 ‘경인사화(庚寅史話)’였다. 1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동아일보 편집고문 촉탁으로 근무하기도 한 윤백남은 단군 개국 71주(週) 경인년의 역사를 회고했다. 2

 

“이제 우리가 맞이한 새해 경인은 대한민국으로서 다단하였던 일년을 보내고 바야흐로 다행다복하고 서운(瑞運)이 반도의 하늘과 땅에 가득하여 왕양(旺洋)한 건설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매 한갓 환희의 심동(心動)을 면할 수 없지마는 지나간 고종 27년 단기 4223년의 경인세(1890년-인용자 주)에는….” (1950년 1월 1일자 1면)

 

  단군이 개국한 기원전 2333년은 무진년이었다. 일제시기 무진년은 1928년이었고, 해방 후 무진년은 올림픽이 열린 1988년이었다.

 

  1928년 신년호에서 동아일보 촉탁기자 최남선은 개국 71회째 무진년을 맞아 ‘조선 문화의 일체(一切) 종자(種子)인 단군신전의 고의(古義)’란 제목으로 단군의 의미를 고찰했다. 3

 

   최남선에 따르면 조선의 국토와 민족이 하나가 된 신라의 삼국통일도 688년 무진년, 조선의 국토와 민족의 운명을 압록강이하로 국한해버린 이성계의 위화도회군도 1388년 무진년, ‘조선의 근대적 호흡의 한쪽 코ㅅ구멍이 더되는 미국과 기독교와 이에 대한 평양 이 셋붙이 개피떡처럼 역사무대로 끌려 나오게 되든 것’도 1868년 무진년이라는 것이다.

 

  일제시기 무진년 신년사설은 민족적 참패와 문화적 진퇴의 원인을 구명했다. 4 ‘새 힘을 짓자’란 제목의 이 사설은 “정치는 그렇다고 해도 사회운동이 침체한 것은 민족적 원기가 부진하고 신의와 근로가 회피되기 때문”이라며 “근로와 신의라는 두 가지 신조로써 실천의 표어를 지어 민족적 원기를 진작하고 계획적 운동을 진행하자”고 역설했다.

 

  해방 후 무진년 신년사설은 평화적 정권교체와 GNP 1천억 달러, 1인당 소득 3천 달러의 성취에다 서울올림픽 개최를 자부하면서 “‘밑으로부터’와 ‘안으로부터’라는 도도한 흐름을 아우르고 패러다임의 전환에 힘입어 민주와 공화가 자리 잡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

 

  21세기 경인년 신년사설은 일본의 한국강제병합 100주년, 6·25전쟁 발발 60주년, 4·19혁명 50주년, 5·18민주화운동 30주년을 회고했다. 6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국가와 민족에 미래가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영광과 치욕이 교차한 격동의 역사를 넘어 일류 선진국, 선진국민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설 날을 기약하는 새해를 함께 만들자.” (2010년 1월 1일자 A35면)

 

  
                       윤백남 선생                                               최남선 선생

 

 

 

Notes:

  1. 윤백남(尹白南), 경인사화(庚寅史話), 동아일보 1950년 1월 1일자 1면

    국조 단군님의 개국 원년을 당고즉위와 동년이라는 고기(古紀)에 준한다면 단군개국 원년은 무진일 것인즉 오늘까지에 우리는 통산 71회째의 경인년을 맞이하는 것이다.
    60년 만에 돌아오는 경인년이니 71회라 하면 4260년이로되 단군기원 원년이 무진임으로 개국한 후 23년 만에 경인년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4260년에다가 23년을 가산하여 단기 4283년인 것을 뚜렷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득한 고조선시대는 제쳐 두고라도 신라 제1세의 임금 박혁거세대로부터 세어보더라도 통산 34째의 경인이며 이조에 들어서부터도 이미 9회의 경인년을 보냈다。
    이제 우리가 맞이한 새해 경인은 대한민국으로서 다단하였던 일년을 보내고 바야흐로 다행다복하고 서운(瑞運)이 반도의 하늘과 땅에 가득하여 왕양(旺洋)한 건설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매 한갓 환희의 심동(心動)을 면할 수 없지마는 지나간 고종 27년 단기 4223년의 경인세(1890년-인용자 주)에는 고종즉위 당시에 □중(中)의 괴완을 부리던 조대비가 돌아가고 대한제국의 완전독립을 내외에 선포하기 6년 전의 복잡다단한 정계의 풍운을 잔뜩 실은 해었다.
    이 해에 미국이 우리의 실질적 독립을 인식하고 최초의 공사 하덕(何德·한명·韓名)을 보내온 것도 잊을 수 없는 기록이거니와 미인(美人) 리선득(李仙得)(리센도-아)올 내부협변의 자격으로 초빙해 온 것도 기실 리홍장과 원세개 등의 토한공략(討韓攻略)의 복잡성을 드러낸 것이지마는 또한 오늘의 정세로 따져보면 이상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해 6월에 일본정부의 강박으로 부산과 인천에 있는 우리의 객주 25업체를 없애게 된 것은 당시 일반상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것으로 일본인의 맹독한 조(爪)아가 이미 그때부터 그 악성을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동학교도들이 제2세의 교주 최시형을 받들어가지고 동학공인(公認)운동을 개시하여 광화문밖에 많은 교도들이 모여 시위운동을 한 것도 이 해이었다
    정한 지수에 지나간 경인해의 기록을 낫낫이 들추어볼 수는 없지마는 단기 4163년 순조 30년인 경인년(1830년-인용자 주)은 바로 영국 상선 로-드아마-스트 호가 황해도 몽금포에 내박하여 통상을 요구하던 전해이며 이해 4월에 왕은 광수(廣袖) 주의(周衣·두루마기)로 초교(삿갓가마)를 타고 다님을 금하고 군신에게 당쟁(黨爭)탄인(人)의 폐가 심한 것을 계칙하여 정계를 숙청코자하였다.
    인국중화(隣國中華)에서는 아편의 맹독이 망국의 근원이 될 것을 우려하여 영인(英人)의 아편매소를 제한하여 중국내지에 침입치 못하게 이를 엄금하여 아편전쟁의 원인을 만든 것도 또한 서인동점의 세역에 대항하려든 한 개의 중대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로부터 60년 전 영조46년인 경인년(1770년-인용자 주)에는 문화상로 보아 두어 가지의 중요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으나 하나는 측우기를 만드러서 기상관측의 진전을 도모하는 노력의 일면을 보여주었으며 동시에 문헌비고상위고를 편요하였고 또 하나는 그해 8월에 신간동국문헌비고 백권을 선진한 사실이다。
    영조 46년이면 영조가 돌아가기 전 6년으로 궁중의 제반사정이 이로 말할 수 없이 복잡하였고 정계 역시 영조만년의 소강을 얻은 듯 하였지마는 기실은 결코 안정된 사태를 가지지 못한 때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상 중요한 몃가지의 일이 추진되었음은 극히 반가운 일이었다.

    숙종 36년인 경인해(1710년)는 청국과 범경(犯境)채삼(採蔘)사건으로 외교상 누차의 번잡한 문제가 일어났었다
    원래 우리나라가 중국과 압록강으로써 국경을 삼게 된 것은 이미 당대에 있어서 인정된 바 있었지마는 훨신 나려와 원대에 이르러서는 원의 판도가 압록강을 너머서 훨신 남방에까지  미쳣기 때문에 국경이 모호하게 되었더니 원말에 이르러서는 원의 세력이 점점 밀려가서 다시 압록강으로써 강계를 삼게 되어 있었다
    더구나 고려 신우 14년 무진에는 명에게 대하여 철영(압록강상류 서안일대)의 땅은 본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척하여 살고 있는 땅임으로 당연히 우리나라판도에 들것을 주장하는 표를 올라있지마는 명제는 이를 승인지 않고 압록강으로써 국경을 삼는다고 선언함으로써 압록강이 양국의 강계가 됨이 확고히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강의 서안일대의 땅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출입이 잦았고 여진인과의 래왕과 통상이 성행되고 있었다.

    명정(明廷)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여진인들의 래왕을 기하여 양 국민의 월강래왕을 대하고 명은 서안일대의 지(地)에 건주、모련 등의 위를 설치하였더니 그 후 건주위가 모반□등의 일이 생겻기 때문에 명조는 강과 요동사이에 변책을 □하고 봉황、청하、동주 등 6 변문에다가 진보를 두고 군대를 주둔케 하고 변문과 강사이의 중간지대는 공지로 두어서 일종의 완충지대를 삼았다
    그러던 중 청이 중국을 통일함에 이르매 그 틈을 타서 이 공간지대는 명분만 있을 뿐 실질적 아무런 효과가 없어지고 우리의 유민의 월경자가 족출하고 또 우리 정부에서도 월강 벌목자에게 첩문을 내주기까지 하였다
    월강 채삼자도 이런 때에 많이 생겻슬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청정은 우리 조정에게 대하여 왜 첩문을 주어서 자유로 래왕햇느냐고 힐문을 해왔지마는 우리 조정에서는 강중에 있는 여러 도서는 본래 우리의 땅이라고 주장하여 청사도 그것을 승인하고 돌아간 일도 있었다.
    하여턴 력(力)을 중심 삼아서의 양국의 교섭은 세기에 긍해서의 문제이었다(계속)

  2. 윤백남, 경인사화(庚寅史話) 하, 동아일보 1950년 1월 5일자 1면

    (승전·承前) 원나라와 우리나라의 관계를 상고함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일은 고려 충렬왕시대의 경인년(1290년-인용자 주) 충렬왕 16년에 처녀 17인을 공여로 원에 보낸 일이며 12월에 합단병(哈丹兵) 수만이 침공하여 왓기 때문에 왕이 강화도로 피한 사실이 있다.
    그리고 2년 후 임진년에 왕이 개경으로 돌아왔다
    이조에 들어서의 경인년(1410년-인용자 주)은 이조 제 3대의 태종 즉위 10년 때이다
    이해에 특기할만한 일은 주자소를 신설하여 새로운 주자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일이며 □시(市)전을 작정하여 상업을 발전을 촉진시키었다
    이때에도 국경방면의 문제가 복잡하여 모련위 지휘자 파아□을 유인해다가 죽인 일이 발생하였고 명에서는 우리에게 군자의 착취가 심해서 필경 산마 일만필(一萬匹)을 명으로 보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4월에는 북한에 올양합(兀良哈)(오랑캐)가 침입하여 경원부를 □성(城)으로 옴기기까지하였다
    이 해에 일반인민들의 오승포 사용을 금한 것으로 보면 국초의 경제적 혼란을 통제하려는 뜻에서 나온 듯하며 명랑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해에 평양성이 준공된 일이다
    그리고 이해붙어 교육에 용심(用心)하여 서울에 오부학당을 설치할 준비에 착수하여 이듬해 신묘년에 드디어 이를 개설한 것은 특기할만한 문화적 사실이다

    다음 경인년(1470년-인용자 주)은 우리나라의 문화적 정치에 힘쓰고 그 공속이 적지 아니한 성종의 즉위원년이다
    성종은 경인년 3월에 비로소 정사를 보기 시작했다
    이해에 경국대전의 교정이 끝나서 인쇄에 착수하였고 12월에는 각 도에 명하여 우리나라의 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하여 □□ 1개소씩을 설치케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우리의 뇌수에 잊어지지 않는 인상을 주게 된 선조대의 경인(1590년-인용자 주)은 바로 임진란 2년 전이다
    이 해에는 3월에 통신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이 일본에 들어가서 일본의 국정을 살폇다
    그들이 이듬해 정월에 부산에 귀착하자 뒤를 쫏아오듯 일사(日使)가 3월에 래조하여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선언하였다
    이것이 말하고 보면 임진왜란의 전제이다
    이조에 들어서만도 지나간 경인이 9차에 긍하였으니 그것을 낯낯이 폭록(暴錄)키 번거러워  대략 이것으로서 □□을 하고자 한다(끝)

  3. 최남선, 조선 문화의 일체(一切) 종자(種子)인 단군신전(壇君神典)의 고의(古義)(1), 동아일보 1928년 1월 1일자 7면. 기원 70주(週)의 무진년을 마지하야

    무진년(戊辰年)을 역사적으로 회고한다하면 그것이 단군 건국이라는 조선사 탄생이 대 사실로써 절대한 감격을 자아내게 됩니다. 미상불 조선 국토 급 민족의 회동적 신출발인 신라의 삼국통일도 무진년의 일이며(21주 갑전·甲前) 조선 국토 급 민족의 운명을 압록강의 이쪽으로 웨손으로 국한해 버려서『판도라』의 벌통가튼 반도 이천리에 고립고다라운 운명에 울게 한 단서인 이태조의 위화도 회군 최 도통(都統) 참해(慘害)도 무진년의 일이며(9주 갑전·甲前) 조선의 근대적 호흡의 한쪽 코ㅅ구멍이 더되는 미국과 기독교와 이에 대한 평양 이 셋붙이 개피떡처럼 역사무대로 끌려 나오게 되든 것도 무진년의 일이지마는(1주 갑전) 단군의 태양 압헤는 이것도 오히려 일작화(一爝火)일 따름임니다.

    이 단군의 해라할 무진년을 기념함에는 오즉 순일한 마음으로 단군을 억념(憶念)하며 단군원리를 흔구하며 단군 실적를 정해(正解)하여 단군과 그 사실로부터 오는 우리의 전통생명에 새 자윤(滋潤)과 새 흥분을 주미 아모 것보다 적체(適切)한 일일 것임니다. 동아일보의 호의로써 다월(多月) 연재하든 우리의 단군론이 사정에 인하야 부득이 중지된 후로 내외다방(內外多方)의 속고최독(續稿催督)이 자못 근간(勤懇)하지 안흔 것 아니엇건마는 이럭저럭공홀(倥惚)히 지내는 신세가 오늘날까지 이를 고부(孤負)치 아니치 못하더니 이제 거연(居然)하내 일생에 다시 잇기 어려운 무진년을 당하매 감개가 구을러 깁지 아니치 못하야 이 이상 더 게으름 부릴 넉살이 잇지 아니함니다. 그러나 전일과 가튼 체계적 장논문은 이제 기초를 겨를 하기 어렵고 또 독자도 이를 염고(厭苦)할지 모르겟슴으로 단군론의 통속적 일방법으로 현존 최고의 단군 문헌인 삼국유사 소인(所引)의 고기원문(古記原文)을 민속학 중심의 여러 인문과학적 안공(眼孔)으로 약간 고찰하고 설명해 봄으로 아직 만족하려 함니다. 단군은 진실로 조선문화의 일체 종자인 만큼 그 구명의 방법은 결코 제한적일 수 업는 것임니다마는 화엄의 현담(玄談)으로써 회상(會上)을 농아(聾啞)케 함이 능사가 안일 것이매 위선 누구든지 승인할 근대과학적 해설을 비근(卑近)히 시험하야 무진 연두의 단군행의 일단이나 삼으려합니다
    위선 삼국유사 권일에『고조선 왕검 조선』이라고 제(題)한 원전의 전문을 게재하고 그 일일(一一)의 자구에 취하야 진상과 실의를 통속적으로 더듬어 결론으로 유도하야 보겟습니다.

  4. 새 힘을 짓자, 동아일보 1928년 1월 1일자 1면.


    쓸쓸하고도 적막한 우리 반도 강산에도 새해의 광명이 조요(照耀)하게 되엿다. 일로부터 산에나 들에나 강에나 바다에는 푸른입불근숭이 우는 새 뛰는 고기는 제각금 대자연의 따듯한 품속에서 천부의 자유와 평화를 질기며 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순환반복하는 조물주의 대자애 대조화가 영역의 대소와 민족의 약강을 떠나서 일체 평등으로 화육생장하려 하는 묘기신산(妙機神算)을 규측할 바가 아니냐 그러나 우리는 감히 순환반복하는 대자연의 신기운에 임하야 일배의 신주를 만작하야 각자히 위안하며 호상간(互相間) 경하할 수가 잇는가 마치연인을 일흔 청춘과 자모를 떠난 황구(黃口)가 공규황원(空閨荒原)에서 새해를 마지면서 지낸 한과 오는 근심을 자아내어 스사로 울며 스사로 탄식하는 것과 다름이 업는 것이 우리 형제자매의 심리일 것이며 감정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엇지 하야 남과 가티 새 옷과 새 술로 새해를 마저서 만화방창(萬和方暢)하려하는 대자연의 신기운을 질긔며 누리지 못하고 동패서상(東敗西喪)에 퇴락한 고옥과 황막한 광야에서 장우단탄(長吁短歎)으로 유리방황(流離彷徨)하고 지내는가 이것은 분명히 외적 내적으로 중대한 인과관계가 잇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다

    우리는 이에 잇서서 물론 외래적 원인을 소급(溯及) 구명할 필요도 잇슬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이와가티 참경(慘境)에 이르게 한 내적 원인을 철저히 고찰 반성하야써 회천혁신(回天革新)의 대기운을 촉진치 아니하면 오고 오는 새해를 또한 우수고민(憂愁苦悶) 중에서 그대로 맛게 될 것은 우승열패의 원즉에 잇서서 확연한 사실일 것이다 동량이 최절(摧折)한 후에 풍우가 래습하고 물체가 부패한 후에 징충(徵虫)이 발생되는 것은 엇지 지자(知者)를 대하야서만 추단할 바랴 그러면 외래적 결과보다 몬저 내재적 원인을 구명하야 그 결함과 착오에 대하야 일대 반성을 환기하야써 희망과 분발의 신년을 맛는 것 이 무엇보다도 필요 적체(適切)할 것이다 하물며 원래부터 우열강약의 구별이 업스며 빈부귀천의 차이가 업슴이랴 여하한 민족을 물론하고 자강분투의 정도에 따라서 강약의 운명을 결정하며 문화의 우열을 판정하는 것은 만고(萬古)를 긍하야 불변한 원즉(原則)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엇지하야 민족적으로 이와가티 참패하엿스며 문화적으로 이와가티 잔퇴(殘頹)하엿는가 이곳 오인의 반성할 곳이며 주력할 점일 것이다 이에서 다시 그 원인을 구명하면

    첫재는 민족적 원기의 부진이다 물론 이것은 과거 오백년간 궁극한 전제 정치의 여폐(餘弊)라 하겟지마는 저거도 최근 30년 이내로 세계적 신조류가 반도에 횡일할 때에도 의연히 구일(舊日)의 아몽(阿蒙)으로 최후의 참패를 당한 것이 확연한 사실이 아니엿든가 현재에 잇서서도 우리 사회의 모든 운동이 위미(萎靡·시들고 느른해짐)부진한 큰 원인은 결국 민족적 원기의 퇴세(頹勢)인가한다 구주대전 후 기호망(幾乎亡)의 퇴세(頹勢)를 만회하야 신흥적 기운을 촉진하게 된 것은 독일민족의 의기가 아니며 뢰불발(牢不拔)의 구정(舊政)을 개혁하야 세계의 이목을 경동케 하는 것이『슬라부』족의 쾌거가 아니냐 현하의 세계는 결코 이론이 아니라 실력이며 방임이 아니라 분투인 것을 우리는 명찰할 필요가 잇슬 것이다 그러타고 우리는 결코 우월적 편견과 배타적 주의의 민족적 정신를 고취하는 것은 아니다 저거도 세계인류의 공존공영의 정의감에 잇서서 평등적 지위 자유적 행복을 획득 향수함으로써 대이상을 작할 것이다 그러자면 중심적 조직이 잇서야 할 것이며 통일적 운동이 잇서야할 것은 오인(吾人) 연래의 제창이며 주장인 것을 거듭하야 일언하는 바이며

    둘재는 신의의 퇴폐와 근로의 혐피(嫌避)이다 민족적 원기를 진작하야 조직적 운동을 진행하는데 잇서서는 무엇보다도 신의의 확립과 근로의 존상(尊尙)이다 오늘날 우리 운동의 모든 폐맥과 실패는 신의의 퇴폐와 근로의 혐피이다 신의가 업는 곳에 견고한 단결을 완성할 수 업고 근로가 업는 곳에 분투적 생활을 계속할 수 업슬 것은 필연한 형세일 것이다 환언하면 신의와 근로를 생명과 가티 공인된 사회와 민족이라야 단결의 힘이 잇고 문명의 꼿이 피는 것은 고금의 사승(史乘)이 사실로써 증명하는 바가 아닌가 또한 종래로 우리 사회에 잇서서는 안일 향락의 기분이 넘우 농후하엿섯다 이리하야 모든 문화가 퇴폐하엿다 학술의연구도 상공업의 진흥도 농림의 발달도 결국은 민족전체의 안일적 기분에 참패되고 마럿다. 물론 정치제도의 중대한 결함도 불무(不無)할 것이다 그러나 남양(南洋)의 보고는 지나족의 독점한 바이며 구주의 금융은 유태종(猶太種)의 지배한 바가 아닌가. 형제여 자매여 근로와 신의、이 두 가지 신조로써 희망의 신년을 마저서 실천의 표어를 짓자 이리하야 내부적으로 민족적 원기를 진작하고 이리하야 중심세력을 조직하고 이리하야 계획적 운동을 진행하자 세계의 신국면은 일로부터 전개하려한다 신기운이 촉진하려한다 금년에 드러서 시행될 다수(多數) 열강(列强)의 총선거는 그 무엇을 암시하는가 우리도 새 힘을 준비하야 세계 인류의공존공영하는 무대 우에서 일배의 신주(新酒)를 만작(滿酌)할 기회를 압헤 두고 새해를 맛자.

  5. 신년사-민주공화국 불혹(不惑)의 자리를, 동아일보 1988년 1월 1일자 2면.

    올해 민국의 나이 마흔、이제 불혹(不惑)의 나라이다。민주도 공화도 스스로 불혹의 자리를 잡아야한다。
    엄청난 정치 범람 끝에 우리는 감히 40년 헌정사를 통해 가장 희망과 자부를 갖게 하는 새아침을 맞고 있다。분단을 그냥 둔 채 희망과 자부를 얘기하기는 민망한 마음 없지도 않지만、그러나 88년은 정말 여러 가지 소중한 새 출발이 준비돼야하는 해며、그 출발들이 순조로우면 나라의 격(格)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중요한 해다。
    우선 나라의 현황을 개관하면 정치경제 국제관계 할 것 없이、가령 작년 정초에 비해 훨씬 나은 모습임은 분명하다。

    대견한 정치의 성장
    우리는 50여일 후 정말 처음으로「평화적 정권교체」를 하게 된다。이른바 5공화국이 되면서부터 줄곧 되풀이 약속됐던 일인데도 불과 반년 전까지 과연 말대로 될 것인가를 의심하는 이가 얼마나 많았던가。그러나 끝내 곡절은 많았지만 여야가 합의한 절차를 거쳐 의심하는 이가 없게 만들었다는 것은 정말 스스로 대견한 정치의 성장이다。
    그렇게 많던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게 만든 바탕은 국민의 슬기라고 해야 옳지만 직접 관련되는 정치인들의 응분의 공헌을 소홀히 볼 것도 아니다。
    앞으로 또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자치의 출범이 정치의 이름으로 다시 만만치 않은 새해의 과제로 꼽히지만 지난 한해의 대견한 정국관리 능력으로 미루어 숨가쁘게 벅찬 일은 이미 아니다。

    분야마다 새 출발 준비를
    경제는 정치보다 훨씬 자부를 더해도 좋은 것으로 꼽힌다。 GNP 1천억 달러、1인당소득 3천 달러의 성취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바다。물론 정초에 부총리가 미국으로 뛰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외압이 있고、새로 틀을 잡아가기 위한 노사의 갈등 같은 어려움이 돋보이는 새해이기는 해도、두 자리 숫자의 성장률이나 투자율을 앞지르는 저축률 등 저력은 개발도상국을 벗어나려는 수준이다。
    또 올 가을이면 「아시아」대륙에서는 처음인 서울올림픽이 열린다。 끝내 북한의 태도에 회한이 따르지만 공산권을 포함한 전 세계가 어울리는 자리가 될 것이 확실하며 그것만으로 나라의 키가 성큼 자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얼마간 힘에 겨운 일들이 앞뒤에 따르리라는 것은 유의해야겠지만、「세계속의 한국」을 보여주고 또 자각하는 자리로서 그 이상의 것은 없다。
    그러나 88년의 한국을 현황의 모습만으로 얘기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여러 갈래의 축적된 양의 변화가 질의 변화로 이어지는 한국사회 자체의 변동을 간과할 수 없다。정치 경제 그리고 국제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이런 사회변동에 맞춘「새 출발」이 준비돼야하며、「모든 것의 포괄」로서의 정치는 특히 스스로 민감해야 한다。

    밑으로부터의 변화
    우리의 해방과 분단이 그러하듯 건국도 「밖으로부터」그리고 「위로부터」이루어졌고、헌법을 만들어 민주와 공화를 나라의 기본으로 삼은 지 40년이 되지만、그동안은 줄곧 「밖으로부터」그리고 「위로부터」가 우리 정치를 선도했다。밖으로부터 배워온 소수의 웃사람이 안에 있는 밑의 많은 사람을 가르치듯 해온 것이 이제까지의 방식이었다。그러나 그것이 바뀌어「밑으로부터」와 「안으로부터」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과시하기에 이른 것이 지난 한해의 엄청난 체험이다。

    다양화 사회의 정립
    이런 추세는 새해에는 더、또 그다음 해에는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이른바 「풀뿌리 민주공화」가 누구의 눈에도 거역할 수 없는 줄기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병행하여 또 하나 뚜렷한 것은、정치가 모든 것의 위에 올라앉아 다른 분야를 호령하는 모습으로부터 정치도 다른 분야와 옆으로 나란히 서는 다양화사회의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추세다。지금까지 거의 제한 없이 군림하던 정치가 관료나 금융의 중립성、사법의 독립성에 밀리고 있음은、아직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뚜렷하다。
    더하여 다양한 중간집단의 자율화가 각기 다른 지방의 자치와 함께 시대의 추세로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다。이것은 이미「고르바초프」의 예에서 보듯 어쩌면 한국만이 아닌 세계사의 추세인지도 모른다。
    세계에 열려있는 나라의 민주와 공화는 이미「일국 강권 정치」도 용허하지 않는 지구촌이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높은 문맹률에 소득이 1백 달러 남짓하던 때와 고학력 실업자가 나오고 소득이 3천 달러가 되는 때의 정치나 사회가 같을 수 없는 것은、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모든 관계의 단절로 대응하던 냉전시대와 국교 없이도 교역과 사람의 왕래를 계속 늘려가고 있는 요즘의 한 중공관계가 같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발상의 대전환 있어야
    마침 12년 앞에 21세기가 있다。 다시 나라의 현황을 개관하면、정치 경제 국제관계 할 것 없이 (분단 상황만 제외한다면) 가령 20세기를 앞둔 때에 비해 훨씬 나은 모습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또는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 우리의 민주와 공화는 불혹의 자리를 잡지  못한다。
    「자기만의 완전」을 주장하는 정치、「개(個)를 무시하는 공(公)」을 우기는 정치、「도덕이나 종교가 군림」하는 정치、「리(理)없이 세(勢)만 있는」정치、「대화보다 외치기」를 앞세우는 정치는 88년 이후의 우리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6. 100년을 돌아보고 100년을 함께 꿈꾸자, 동아일보 2010년 1월 1일자 A35면.

    2010년 새날이 밝았다. 지난 한 해 온 국민이 몸 고생 마음고생을 하며 글로벌 경제위기를 비교적 잘 헤치고 나와 맞이한 새해여서 감회가 새롭다. 경인년(庚寅年) 첫날 아침 떠오른 태양은 희망의 빛으로 눈부시다.
    시간의 흐름에는 매듭이 없지만 인간은 긴 시간의 마디마디에 새겨진 의미를 되새기며 내일을 설계한다. 새해 첫날 동아일보는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온 국민과 함께 새로운 100년을 꿈꾸려 한다. 올해는 일본의 한국강제병합 100주년, 6·25전쟁 발발 60주년, 4·19혁명 50주년, 5·18민주화운동 3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세기는 국권의 상실과 치욕으로 시작했지만 2010년은 경제의 재도약,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품격 있는 선진문화국가로 달려 나가는 원년(元年)으로 맞이해야 한다. 스스로 자랑스럽고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자중자애하고 자강불식(自强不息)해야 한다. 자학하고 자해(自害)할 이유가 없다. 서로 헐뜯고 대립 분열하는 것은 스스로를 약화시키고 세계의 변방으로 내모는 어리석은 일이다. 언젠가 다가올 남북 7400만 민족의 통합을 준비하면서 남쪽 5000만과 세계 동포들의 에너지를 모아야 할 때다.

     지구의(地球儀)를 돌려보면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국토, 중국의 거의 30분의 1밖에 안 되는 인구로 광복 후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국가로 일어선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 위에 한국인의 우수성과 근면성이 따르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연말 우리는 프랑스 일본 등 막강한 경쟁국을 제치고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원자력발전소를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은 세계질서를 새롭게 설계할 주요 20개국(G20) 올해 정상회의를 주재하는 의장국이다. 대한민국의 총체적 저력이 발휘된 결과라고 자부할 만하다. 지금 자랑스러운 코리안은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세계 곳곳에서 낭보를 전해오고 있다. 이런 잠재력을 하나로 모은다면 대한민국은 약진하고 웅비해 국운 융성의 새 시대를 맞을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런데 나라 안을 둘러보면 정치권은 시정잡배 패싸움하듯 사사건건 충돌하고 파열음을 높인다. 명색이 대의(代議)민주정치의 전당인 국회에서 다수결 원칙이 무너지고, 타협과 양보의 정신은 실종됐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나라 예산조차 제때 제대로 짜지 못하는 서글픈 상황이 해마다 되풀이된다. 이런 난장판 정치의 틈바구니에서 온 국민이 경제위기를 막아내고 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무역수지 흑자를 냈다는 것이 또 하나의 기적 같다.
     
    이제 더는 안 된다. 정치가 화합과 통합을 견인하기는커녕 거꾸로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면서 분열의 한 축이 된 상태로는 세계적 무한경쟁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밝히기 어렵다. 1910년 일본에 강제 병합돼 35년간 나라 잃은 질곡 속에서 살아야 했던 통한(痛恨)의 역사를 오늘 되새겨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바로 100년 전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 앞에서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직면했는데도 지도층은 세계의 조류를 보지 못하고 소아적(小我的) 이익에 눈이 멀어 집안싸움에 급급하다 국권 상실의 비운을 맞았다.
    한 세기가 흐른 지금도 결코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와중에서 남북이 대치하며 북의 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100년 전 망국(亡國)을 재촉한 내부의 요인들을 거울삼아 다시는 수치스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아야 한다. 이념 지역 계층갈등을 부추기는 대립과 분열은 이 나라 국운을 쇠잔케 할 뿐임을 각계각층이 깊이 깨닫고 망국적 행태를 불식하기 위해 마음과 힘을 합쳐야 한다.

    올해 발발 60년을 맞는 6·25전쟁은 김일성 집단이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침략전쟁이었다. 양측의 군인 사상자만 243만 명에 이르고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을 남긴 채 정전상태로 대치 중이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지난해 ‘원조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해 도움 받는 나라에서 도와주는 나라로 대변신을 이루었다. 이에 비해 북은 주민 대다수가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절대빈곤 상태에 있다. 인권 상황도 세계 최악이다. 김정일 정권은 심지어 어떤 공산 독재국가도 시도하지 못했던 3대 세습을 획책하고 있다.
    올해도 남북관계에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북이 지난해처럼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같은 도발을 되풀이할 수 있다. 북-미 간 물밑 대화를 통해 북-미, 남북관계에 큰 변화를 초래하는 돌발변수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한미동맹을 탄탄히 다지면서 한일, 한중관계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북핵과 북의 적대적 태도에 구체적인 변화가 없으면 미국과 2년 4개월 앞으로 다가온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수정 논의를 늦어도 올해는 시작해야 한다. 북의 화폐개혁과 3대 세습 시도로 말미암아 벌어질지도 모를 예기치 않은 변란에도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핵 없는 세계’의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일면 압박하고 일면 설득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도 안 된다.

    올해 각각 50주년과 30주년을 맞는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은 민주화의 밑거름이 된 사건들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헌법정신과 법의 지배를 따르고 정파적 이해를 떠나 세계 공통의 민주주의 원칙과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화 완성의 길이다.
    올해엔 지방선거가 있다. 우리는 선거를 진정한 민주주의 축제로 만들어야지, 정쟁과 무책임한 공약 경쟁으로 민주주의를 얼룩지게 하고 결국 국민에게 경제적 부담마저 가중시키는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유권자들도 눈앞의 달콤한 약속에 현혹되지 않고 대한민국의 지속적 발전 속에서 함께 복리(福利)를 나눌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내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할 줄 알고, ‘떼법’이 아닌 법과 원칙을 통해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며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해야 진정한 민주국가가 될 수 있다.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세계에서 자기책임과 사회적 신뢰의 자본을 축적해야만 국격(國格) 높은 선진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21세기 국제사회에서는 하드파워에 못지않게 국가의 품격이나 이미지 같은 소프트파워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국회 폭력이 난무하고 거리에서 기초질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수준으로는 국격을 말하기 어렵다. 
    올해로 창간 90주년을 맞는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 숱한 정간과 기사 삭제를 당하면서도 민족의 목소리를 대변하다 1940년 끝내 폐간을 당했다. 1945년 12월 1일 복간한 뒤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하기 위해 반(反)민주 권위주의 정권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든 좌파 정권을 향해 시시비비로 맞섰다. 동아일보는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국리민복을 위한 정론(正論)을 펼 것이며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국가와 민족에 미래가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영광과 치욕이 교차한 격동의 역사를 넘어 일류 선진국, 선진국민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설 날을 기약하는 새해를 함께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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