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

  미국에서 1981년 나온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중 김성수 관련 기술만큼 잘못된 것이 많고 1 학계에 영향력이 컸던 경우도 드물다. 2

 

  커밍스의 기술과 달리 김성수는 중추원 참의를 한 적도 없고 그 같은 종류의 연설문을 작성한 적도 없다. 3 커밍스의 기술대로 영문팸플릿에 김성수가 했다고 하는 연설문이 영문으로 실린 것은 사실이다.

 

  해방직후 한국민주당 선전부 소속으로 있던 송남헌조차 이 책을 참조해 자신의 저서에서 김성수를 총독부 자문위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4 송남헌은 서문에 “미국의 대한 정책이나 하지 중장 및 미군정청 관계부문에 대해서는 브루스 커밍스의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일본 도쿄대에서 1972년 ‘미군정기 한국의 민족주의’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상룡도 1988년 저서 ‘미군정과 한국민족주의’에서 이 영문팸플릿을 인용하고 있다. 5

 

  미국 내 한국학 연구의 주류에 속하는 카터 에커트는 2003년에 출간한 ‘제국의 후예’에서 영문팸플릿이 아니라 매일신보를 인용하고 있다. 6 에커트 역시 커밍스의 책을 참조해 김성수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고 소개하고 있다. 7

 

 

 

Notes:

  1. Bruce Cummings,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Ⅰ,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1.;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상, 청사, 1986, 김주환 옮김, 255쪽.

    아놀드의 성명서에 대항해서 인민공화국은 ‘반역자와 애국자’라는 유명한 팜플렛을 출판했다. 그 팜플렛은 아놀드의 성명서가 “너무 모욕적이므로 우리의 신문에 그것을 발표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민공화국은 정당하게 구성된 인민의 기관이다. 미군정은 외세의 그늘 아래서 또 다시 대중을 억압하려는 친일파들의 자문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군정이 진짜로 ‘타락한’ 사람들을 찾아보려거든 1943년 11월 5일자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가 건설되고 있읍니다. 지금이야말로 황도(일본제국주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때입니다’라고 연설한 김성수를 알아보아야 한다. 한민당의 지도자들인 이용설, 백낙준, 장덕수, 구자옥은 중추원의 고문으로서 일제말기에 김성수와 같은 연설을 하고 다녔다. 그 내용을 자세히 알려거든 1941년에서 1945년까지의 매일신보를 보면 된다.” (각주)-‘HUSAFIK,’ vol.2, ch.Ⅰ,p.10 그리고 G-2 ‘Weekly Report,’ no. 7, October 21-28, 1945년에 게재된 원본을 보라. 이용설은 43년 6월 25일, 백낙준은 43년 6월 25일, 구자옥은 44년 6월 7일 연설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장덕수는 진주만 공격이 있은지 4일 후인 41년 12월 11일 매일신보를 통해서 미국인들을 ‘흡혈귀’라고 비난했다. 그 원본에는 또한 미군정 고문이었던 양주삼이 매일신보 44년 8월 6일자에서 “미국인들은 인류의 적이다”라고 말한 기록이 있다. 그리고 인민공화국의 10월 5일자의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팜플렛을 보시오. “미국시민에게 드리는 메시지:우리 인민은 당신들이 한국상황의 이면을 잘 살펴보기를 간청합니다. 즉 한국에는 이른바 ‘중산층’이 없으며 일제하에서 고생한, 단지 가난한 한국인들뿐입니다. 부유층 및 정치적 사회적으로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은 친일파였거나 한국에 이민온 일본인들입니다.”(‘ⅩⅩⅣ Corps Journal’, October 12,1945 entry).

  2. Bruce Cummings,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Ⅰ,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1.;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상, 청사, 1986, 김주환 옮김, 169쪽.

    한민당의 주요 멤버는 김성수 송진우 등이 이끄는 지주 기업가 언론인의 연합체였다. 이 호남그룹은 우리가 제 1장에서 살펴본 ‘지주식 기업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사람들은 1920년대에 개혁주의적이고 점진적인 방법에 의한 일제와의 저항을 추구했던 사람들이었는데, 중일전쟁 이후로는 일제에 의해 끊임없는 협력의 요구를 받아 독립운동노선에서 거의 탈락한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부일협력자였느냐의 여부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송진우와 같은 사람은 자기의 위치를 정당화시켜 주었던 전통적인 정통성을 손상시킬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공식 자료에 의하면 송진우가 일제의 전쟁 노력에 협력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가 일제에 저항했다고 해봤자 병을 핑게삼아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 이러한 소극적인 행동도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한국인들에게는 애국적이고 그의 위치에 합당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연설문이나 글을 통해서 보나 중추원의 고문으로 있을 때의 행적을 통해서 보나 김성수가 1940년대 초기에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었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3. 국사편찬위원회, 자료대한민국사 제3권,1946년 11월 1일, 사법부장 김병로, 전 중추원참의 김성수와 입법의원 김성수는 이인(異人).

    임시입법의원 대의원의 선거에서 과거 일정시대의 중추원참의 논의를 배제하기로 되어 있음은 일반이 잘 아는 바이어니와 이번 서울시에서 당선된 김성수(金性洙)가 군정청관보에는 중추원참의를 역임한 것으로 적혀 있어서 세간 일부분의 의혹을 사게 되는 점이 있으므로 사법부장 김병로는 1일 담화를 발표하여 김성수는 김승수(金承洙)가 영문으로 비슷한 발음이었던 관계상 그가 그릇 번역된 것이라고 대의원에 선거된 김성수의 처지를 밝혀 주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4. 송남헌, 해방 3년사 1 1945~1948, 까치, 1985, 101쪽.

    그리하여 10월 5일 군정장관의 한국인 고문으로 김성수 전용순 김동원 이용설 오영수 송진우 김용무 강병순 윤기익 여운형 조만식 등 11명을 임명하였다. 이중 여와 조를 제외한 9명은 모두 한민당 계열이었다. 이와 같이 미군정 초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바로 일인 총독부 관리들과 한민당이었다. 여는 사퇴하고 조는 불참한 가운데 호선에 의하여 김성수가 위원장이 되었다(그는 총독부의 자문위원이었다).

  5. 최상룡, 미군정과 한국민족주의, 나남, 1988, 93쪽.

    이 성명에 대해 여운형은, “미군정이 조선의 현상을 정확히 조사하여, 자기 이익만을 위해 ‘고문 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10명의 ‘배신자’ 조선인이 퍼뜨리고 있는 허위정보가 아닌, 올바른 정보를 손에 넣도록” 제안했다. 또한 ‘인공’은 10월에 내놓은, <반역자와 애국자>라는 영문 팸플릿에서, “오랫동안 지하 운동을 해 온 사람들에 의해, 일본 항복 후 조직된 ‘인공’이야말로 조선 인민의 진정한 의사를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민은 이해해 주기 바란다. 만약 미군정이 이 조선 인민의 정부에 반대한다면, ‘세기의 비극’이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6. Carter J. Eckert, Offspring of Empire:The Koch’ang Kims and the Colonial Origins of Korean Capitalism 1876~1945, University of Washington, 2003.;카터 J 에커트, 제국의 후예-고창 김씨가와 한국 자본주의의 식민지 기원 1876~1945, 주익종 옮김, 푸른역사, 2008, 361쪽.

    김성수의 이름으로 된 그러한 논설 하나가 총독부의 새 학병제도가 공표된 직후인 1943년 11월 7일자 매일신보에 실렸다. 논설은 “대의에 죽을 때: 황민됨의 책무는 크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고, 매일신보가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라는 연재물로 저명 한국인들에게 할당한 기고문 중의 하나였다.

  7. Carter J. Eckert, Offspring of Empire:The Koch’ang Kims and the Colonial Origins of Korean Capitalism 1876~1945, University of Washington, 2003.;카터 J 에커트, 제국의 후예-고창 김씨가와 한국 자본주의의 식민지 기원 1876~1945, 주익종 옮김, 푸른역사, 2008, 주석 471쪽.

    중추원이 미군정청에 의해 해산된 1945년 11월 김성수는 중추원 참의로서 이름이 올라 있었다. B. Cummings,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Ⅰ’, PP.148,198n.64.

댓글 한 개 »

  1. how to hack a facebook account 2014 no download…

    D-storyⅡ 49 : 반역자와 애국자(5)-영문팸플릿과 브루스 커밍스 | 동네 :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

    트랙백 by how to hack a facebook account 2014 no download — 2015/01/28 @ 6:29 오후

RSS feed for comments on this post. TrackBack URL

Leave a comment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