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 연합국 미영중은 조선인민의 노예적 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조선이 자유롭게 독립되어야함을 결정한다』「카이로」선언、1943년 11월 27일. 1
『「카이로」선언의 조항은 이행될 것이며、또 일본의 주권은 본주(本州) 북해도(北海道) 구주(九州) 및 사국(四國)과 우리들이 결정하는 작은 섬에 국한될 것이다』「포츠담」선언 제8항、1945년 7월 26일. 2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은 조선의 독립을 천명했으나 구체적 절차와 시기가 명문화되지 않아 해방 이후에도 미국과 소련의 군정이 계속됐다. 이 가운데 38선 이남에서는 건국의 방향을 둘러싸고 좌·우익의 정치적 대립이 극심했다.
1945년 12월 1일 복간된 동아일보는 ‘각(各) 길로 한 신지(信地), 완전(完全)한 자주독립(自主獨立)’ 이란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하루하루 신문을 발간했다. 그 방향은 자유민주주의 가치 수호였다.
동아일보는 중간호인 1945년 12월 1일자와 다음날자인 2일자 2면에 ‘당면한 우리의 신호(信呼)’라는 특집기사에서 임시정부 지지와 미군정의 일반적 시책 협력을 공언했다.
‘당면한 우리의 신호(信呼)’ 첫번째는 ‘최고 유일의 정부, 기미운동 후 총의로 성립, 임시정부 절대 지지하자’ 3였다.
제1차 대전후 민족자결주의가 세계 주조가 됨에 이르러 전 세계의 피압박민족-강국의 침략을 당하야 국가를 잃었던 일헛든 약소민족은 동서의 별(別, 구별)이 업시 자유의 햇불을 들고 궐연(蹶然)히 일어섯섯다. 유구 오천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도 이 기회를 노칠 리 업서서 손에 촌철(寸鐵)이 업슬망정 삼천만의 총의와 총력과 총혈을 무기로 강도폭정의 총칼압에 일어섯든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기미독립운동이엇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 운동의 결과였다.
즉 1919년 3월 1일 세계를 향하야 당당 조선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는 동시에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파까지 싸운다는 결의를 표명하고 이래(以來) 삼천리 방방곡곡 진진포포에서 일군경(日軍警)과의 투쟁을 시작하엿다. 원래 승패의 관념을 초월한 자부능이(自不能已)의 싸움이 잇슬 뿐 아니라 문자 그대로 적수공권의 혈전이엿슴으로 가지가지의 희생을 남긴 채 조직적 표면투쟁은 시일의 경과를 따라서 제압되고 말엇다. 그러나 일차 폭발된 투쟁의지는 삼천만 민족혈관 속에 그대로 잠류하야 쉬지안코 생동하고 잇엇다. 국내에서는 지하로 잠입하야 이심전심의 전법으로 부절히 투쟁은 게속하엿고 또 국혼을 등에 지고 풍상노숙 30년간 해외에 망명하야 오직 조국 재흥(再興)을 단심 축원하엿든 것이다. 이와갓치 국내국외가 서로 호응하야 동일한 국혼을 가지고 오늘까지 싸워왓든 것이다. (1945년 12월 1일자)
대한민국은 헌법의 전문(前文)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하야 1919년 4월 17일에는 중국 상해에서 이승만 씨 김규식 씨 안창호 씨 등을 중심으로 대한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연호를 대한민국 원년(元年)으로 작정하엿었다. 이것은 기미만세운동 후 즉 동년 4월 16일에 민의를 대표한 조선 13도 대표들이 서울에 모혀서 국민대회를 열고 정부를 수립하엿엇는대 이와 연락하야 해외에서도 임시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임시정부는 곳 조선민족의 총의에 의하여 성립된 것인바、다못 일본 관헌의 탄압을 피해서 해외로 국혼을、등에 지고 나간 망명정부인 것이다、과거 27년간 형극의 길을 걸어온 임시정부는、우리의 최고 존엄인 동시에、그 지도에 복응(服膺)하여야할 조선의 정통 정부이다、(1945년 12월 1일자)
사실 조선의 독립문제가 국제사회에 처음 정식으로 등장한 것은 카이로 선언에서였고, 그것은 임시정부의 노력의 결과였다.
특히『카이로』회담 시에는 장개석 주석이 조선의 자주 독립을 제안하엿다는 사실은 이미 다 공인 바인데 이것은 오로지 김구 주석 이하 임시정부 요인이 심혈을 경주한 노력과 분투을 결과라고 아니 할 수 업다、『카이로』선언은 미영중 3국이 세계에 공약한 것으로서 국제공약에 조선문제가 정식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아마 이것이 처음일 것이다. 미국에서 이승만 박사의 불굴불요의 노력과 중경(重慶)에 잇는 우리 임시정부 요인들의 분투가 업섯대면、과연 우리에게『카이로』선언이란 절호의 기회가 그러케 간단히 재래(齎來)하엿을 수 잇을가? 임시정부가 국제적으로 중불미을 비공식 승인을 밧게된 것 역시 해외에 게시는 임시정부요인들에 활동에 의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업다. (1945년 12월 1일자)
실제로 송진우 사장을 중심으로 한 동아일보는 복간 후 줄곧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새 정부 수립이 민족화합의 길’이라는 ‘임정봉대론(臨政奉戴論)’을 주장했다. 4
이와갓치 기미 만세운동을 계기로 국내 국외에서 서로 호응하야 국혼을 지고 해에 망명한 임시정부는 우리 민의에 의한 정부이니 우리는 이를 절대지지하는 동시에 여기에 대립 혹은배치되는 정부나 단체가 잇다면 그것은 배격하지 안흐면 안된다.『카이로』선언에 약속된 조선의 자유 독립국가수립은 임시정부를 토대로 한 정치세력의 집결이 안니면 안풀 줄 안다. 출발이 민의에 의하지 안흐면 안되나니 삼천만 민족은 모름즉이 임시정부에 귀의하지 안흐면 안된다. (1945년 12월 1일자)
‘당면한 우리의 신호(信呼)’ 두번째는 ‘총력을 일점에 집결, 완전한 자주권 획득하기까지, 독립촉성시책에 협력하자’ 5였다.
『카이로』선언에 약속된 조선의 자주독립은 언제 실현되나, 이것이 삼천만 우리 민족이 다갓치 대망하는 문제이다. 동서양역에서 일독군(日獨軍)의 침략주의와 세기의 사투를 전개한 연합군이 영웅적 승리의 개가를 불으게 되어 드듸어 조선에까지 미소양군이 진주한지 벌서4개월을 마지하게 되엇다. 지난 9월 8일 조선에 진주한 미군『하지』중장은 누차 언명하기를『우리 미군은 조선의 자주독립을 실현시키고저 진주한 것이다. 그 시기의 지속은 여러분의 노력 여하에 달렷다』38도 이북의 소련군도 조선의 해방을 위하야 진주한 것이라고 수차 포고를 발(發)하엿다. (1945년 12월 2일자)
해방과 더불어 미 육군 남조선주둔군 사령관으로 취임한 존 하지(John R Hodge) 중장은 9월 8일 인천항에 도착했다. 미군정은 남한에서 미군정 이외 일체의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혔다. 9월11일 아놀드 소장을 군정장관으로 하는 미군정이 시작됐다.
당면의 38도 장벽문제와 38도 이남의 미군정 실시문제는 엄연한 현실의 사태이다。 이 문제에 대하야 미소간에 교섭 진행중인데 불원 철폐되리라는 보도까지 전해 온다. 그리고 미군정 당국에서는 조선의 통일국가완성을 실현시키고자 이승만 박사、김구 주석이하 임시정부 요인을 환국케 하엿다、확실히 이 박사의 환국을 계기로 하야 난립상태에 잇는 국내 각정당이 일단 통합하야 독립촉성 중앙협의회를 결성한 것은 일보의 전진이요 건국의 제1 계단이라고 아니할 수 업다. (1945년 12월 2일자)
복간 일주일전인 11월 23일, 김구 주석이 다른 임시정부 요인들과 환국했고, 이에 앞서 10월 16일 이승만 박사가 부인과 함께 귀국했다. 이들의 귀국은 개인자격이었다.
김구 주석은 금후 어떠한 활동을 할는지 삼천만 민중은 기대하는 바 적지안타. 이와 갓치 우리는 안으로 각파 통일전선을 결성하는 동시에 미군정 당국의 시책에 일치협력하야 하로라도 빨리 자주독립 국가건설을 하지 안흐면 안된다. 이것은 다시 논의할 필요도 업시 삼천만 민족이 다갓치 열망하는 바로서 민족해방의 국내 통일전선을 결성하는 동시에 삼천리 강토에 타인의 손을 빌 것업시 우리 손으로 건설하여야 한다는 것은 무조건으로 긍정할 줄 안다.(중략)
여기에 우리는 미군정 당국의 일반적 시책에 적극적 협력하며 우리 손으로 건국의 대업에 매진하지 안으면 안된다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업는 것이다. 침략주의『팟쇼』를 파쇄한 연합군은 세계약소민족을 해방시키여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하야 민족단위의 자주 독립 국가 건설을 기하는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목적이요 이상이엇다. 이 이상과 목적을 달성시키기위하야 연합군 측에 적극 협력하야 그 시책에 성과 잇도록 솔선 정진하지 안흐면 안된다. 물론 그 시책 자체가 조선의 자주 독립국가 건설을 위하야 적당한가 안흔가 하는 것도 우리는 엄중 경계하여야 할 문제이겟지만 적어도 그것이 우리의 건설대업을 위하야 타당한 것이라면 일치 협력하여야 한다. (1945년 12월 2일자)
동아일보는 미군정 당국의 일반적 시책에 협력하되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천명했다.
8.15 이후에 국내에는 각양각색으로 각층각파는 독립상태에 잇는데 벌서 4개월을 마지하게 되는 금일에도 의연구태을 고집하는경향이 잠재하고 잇다. 이것은 여러 가지 사유도 잇겻지만 과오를 반성하지 못하는데 중대원인이 잇는 줄 안다 과거의 과오를 청산하며 반성하야 자기비판이 잇서야만 발전이 잇고 창조가 잇는 것이다.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물론하고 독선적이요 무비판의 민족은 운명적으로 멸망을 약속하는 것이다. 또 항상 반성하며 자기비판하는 민족은 일시을 곡이의 잇을 지언정 결국은 유구히 발전하며 개척되는 것이라는 것은 역사가 실증하는 사실이다. 우리는 각당 각파가 일치협력하야 독립국가 건설에 정신하자!여기에는 과거를 천□할 것 업시 과오가 잇다면 반성하야 청산하고 건설에 매진하면 그는 곳 발전의 길을 전진하는 것이다. (1945년 12월 2일자)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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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회담, 국가기록원 나라기록 포털
President Roosevelt, Generalissimo Chiang Kai-shek and Prime Minister Churchill, together with their respective military and diplomatic advisers, have completed a conference in North Africa.
The following general statement was issued:
“The several military missions have agreed upon future military operations against Japan. The Three Great Allies expressed their resolve to bring unrelenting pressure against their brutal enemies by sea, Iand, and air. This pressure is already rising.”
“The Three Great Allies are fighting this war to restrain and punish the aggression of Japan. They covet no gain for themselves and have no thought of territorial expansion. It is their purpose that Japan shall be stripped of all the islands in the Pacific which she has seized or occupied since the beginning of the first World War in 1914, and that all the territories Japan has stolen from the Chinese, such as Manchuria, Formosa, and the Pescadores, shall be restored to the Republic of China. Japan will also be expelled from all other territories which she has taken by violence and greed. The aforesaid three great powers, 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re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With these objects in view the three Allies, in harmony with those of the United Nations at war with Japan, will continue to persevere in the serious and prolonged operations necessary to procure the unconditional surrender of Japan.” ↩ -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회담, 국가기록원 나라기록 포털
“Proclamation Defining Terms For Japanese Surrender”
(1) We –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the President of the Nat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China, and the Prime Minister of Great Britain, representing the hundreds of millions of our countrymen, have conferred and agree that Japan shall be given an opportunity to end this war. (2) The prodigious land, sea and air forces of the United States, the British Empire and of China, many times reinforced by their armies and air fleets from the west, are poised to strike the final blows upon Japan. This military power is sustained and inspired by the determination of all the Allied Nations to prosecute the war against Japan until she ceases to resist. (3) The result of the futile and senseless German resistance to the might of the aroused free peoples of the world stands forth in awful clarity as an example to the people of Japan. The might that now converges on Japan is immeasurably greater than that which, when applied to the resisting Nazis, necessarily laid waste to the lands, the industry and the method of life of the whole German people. The full application of our military power, backed by our resolve, will mean the inevitable and complete destruction of the Japanese armed forces and just as inevitably the utter devastation of the Japanese homeland. (4) The time has come for Japan to decide whether she will continue to be controlled by those self-willed militaristic advisers whose unintelligent calculations have brought the Empire of Japan to the threshold of annihilation, or whether she will follow the path of reason. (5) Following are our terms. We will not deviate from them. There are no alternatives. We shall brook no delay. (6) There must be eliminated for all time the authority and influence of those who have deceived and misled the people of Japan into embarking on world conquest, for we insist that a new order of peace, security and justice will be impossible until irresponsible militarism is driven from the world. (7) Until such a new order is established and until there is convincing proof that Japan’s warmaking power is destroyed, points in Japanese territory to be designated by the Allies shall be occupied to secure the achievement of the basic objectives we are here setting forth. (8) The terms of the Cairo Declaration shall be carried out and Japanese sovereignty shall be limited to the islands of Honshu, Hokkaido, Kyushu, Shikoku and such minor islands as we determine. (9) The Japanese military forces, after being completely disarmed, shall be permitted to return to their homes with the opportunity to lead peaceful and productive lives. (10) We do not intend that the Japanese shall be enslaved as a race or destroyed as a nation, but stern justice shall be meted out to all war criminals, including those who have visited cruelties upon our prisoners. The Japanese Government shall remove all obstacles to the revival and strengthening of democratic tendencies among the Japanese people. Freedom of speech, of religion, and of thought, as well as respect for the fundamental human rights shall be established. (11) Japan shall be permitted to maintain such industries as will sustain her economy and permit the exaction of just reparations in kind, but not those which would enable her to re-arm for war. To this end, access to, as distinguished from control of, raw materials shall be permitted. Eventual Japanese participation in world trade relations shall be permitted. (12) The occupying forces of the Allies shall be withdrawn from Japan as soon as these objectives have been accomplished and there has been established in accordance with the freely expressed will of the Japanese people a peacefully inclined and responsible government. (13) We call upon the government of Japan to proclaim now the unconditional surrender of all Japanese armed forces, and to provide proper and adequate assurances of their good faith in such action. The alternative for Japan is prompt and utter destruction.
출전: US Department of State, The Department of State Bulletin, No.318 (1945), pp.137-138; Japan’s Foreign Relations: Basic Documents Vol.1, pp.73-75. ↩ -
1945년 12월 1일자 2면 동아일보
當面한우리의信呼最高唯一의政府已未運動後總意로成立臨時政府?對支持하자第一次大戰後民族自決主義가世界主潮가됨에이르러 全世界의被壓迫民旅|强國의侵略을當하야『國家를일(其一)헛든 弱少民旅은東西의別이업시 自由의햇불을들고蹶然히일어섯섯다 悠久五千年의歷史를가진우리民旅도 이機會을노칠理업서서 손에寸鐵이업슬망정 三千萬의總意와總力과總血을武器로 强盜暴政의총칼압에 일어섯든것이니 이것이이른바已未獨立運動이엇다卽一九一九年三月一日世界를向하야堂堂朝鮮民族의自主獨立을宣言하는同時에最後의 一人最後의 一派까지싸운다는決意를表明하고以來三千里坊坊谷谷津津浦浦에서日軍警과의鬪爭을始作하엿다 原來 勝敗의觀念을超越한自不能已의싸움이잇슬뿐아니라 文字그대로赤手空拳의 血戰이엿슴으로가지가지의犧牲 을남긴채組織的表面鬪爭은 時日의經過를따라서制壓되고말엇다 그러나一且爆發된鬪爭意識은三千萬民族血管속에 그대로?流하야쉬지안코生動하고잇엇다 國內에서는地下로?入하야以心傳心의戰法으로不?히鬪爭은게속 하엿고또國魂을등에지고風霜露宿三十年間海外에亡命하야오직祖國再興을丹心祝願하엿든것이다이와갓치國內國外가서로呼應하야 同一한國魂을가지고 오늘까지싸워왓든것이다 그리하야一九一九年四月十七日에는中國上海에서李承晩氏 金奎植氏 安昌??氏 等을中心으로大韓臨時政府를組織하고年號를大韓民國元年으로作定하엿잇다 이것은已未萬歲運動後卽同年四月十六日에民意를代表한朝鮮十三道代表들이 서울에모혀서國民大會를열고政府를樹立하엿엇는대이와連絡하야海外 에서도 臨時 政府를樹立한것이다臨時政府는곳朝鮮民族의總意에依하야成立된것인바、다못日本官憲의彈壓을避해서海外로國魂을、등에지고나간亡命政府인것이다、過去二十七年間荊棘의 길을걸어온臨時 政府는、우리의最高尊嚴인同時에、그指導에服膺하여야할朝鮮의正統政府이다、特히『카이로』會談時에는蔣介石主席이朝鮮의自主獨立을提案하엿다는事實은이미다共認바인데이것은오로지金九主席以下臨時政府要人이心血을傾注한努力과奮鬪을結果라고아니할수업다、『카이로』宣言은美英中三國이世界에公約한것으로서國際公約에朝鮮問題가正式으로登場하게된것은 아마이것이 처음일것이다 米國에서 李承晩博士의 不屈不撓의努力과 重慶에잇는 우리臨時政府要人들의奮鬪가업섯대면、果然우리에게『카이로』宣言이란?好의機會가 그러케 簡單히齎來하엿을수잇을가?臨時政府가國際的으로中佛美을非公式承認을밧게된것亦是海外에게시는臨時政府要人들에活動에依한것이라고아니할수업다이와갓치 已末萬歲運動을契機로國內 國外에서서로呼應하야國魂을지고海에亡命한臨時政府는 우리民意에依한政府이니 우리는 이를?對支持하는同時에 여기에對立或은背馳되는政府나團體가잇다면그것은排擊하지안흐면안된다『카이로』宣言에約束된朝鮮의 自由獨立國家樹立은臨時政府을土臺로한 政治勢力의集結이안니면안풀줄안다 出發이民意에依하지안흐면안되나니 三千萬民族은모름즉이 臨時政府에 歸依하지안흐면안된다 ↩
- 동아일보 80년사 편찬위원회, 민족과 더불어 80년(동아일보 1920~2000), 동아일보사, 2000년, 283쪽
광복 정국에 송진우는 줄곧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새 정부 수립이 민족화합의 길’이라는 ‘임정봉대론(臨政奉戴論)’을 주장했다. 각 정파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당시로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 그의 논지는 후에 대한민국 헌법이 ‘임정법통계승’을 정식으로 규정하게 되는 하나의 물줄기를 이루게 된다. ↩ -
1945년 12월 2일자 2면 동아일보
當面한우리의信呼總力을一點에集結完全한自主權獲得하기까지獨立促成施策에協力하자『카이로』宣言에約束된朝鮮의自主獨立은언제實現되나 이것이 三千萬 우리民族이 다갓치待望하는問題이다 東西兩域에서 日獨軍□의 侵略主義와 世紀의死鬪를展開한 聯合軍이英雄的勝利의凱歌를 불으게되어 드듸어朝鮮에까지美蘇兩軍이進駐한지 벌서四個月을마지하게되엇다지난 九月 八日朝鮮에進駐한美軍『하지』中將은累次言明하기를『우리美軍은 朝鮮의自主獨立을 實現시키고저 進駐한것이다그時期의遲速은 여러분의努力如何에달렷다』三八度以北의蘇聯軍도 朝鮮의解放을爲하야 進駐한것이라고數次布?를發하엿다當面의三八度障壁問題와 三八度以南의美軍政實施問題는嚴然한現實의事態이다。 이問題에對하야美蘇間에 交涉進行中인데不遠撤廢되리라는報道까지傳해온다그리고 美軍政當局에서는 朝鮮의統一國家完成을實現시키고자 李承晩博士、金九主席以下臨時政府要人을 還國케하엿다、確實히 李博士의還國을契機로하야 亂立狀態에잇는 國內各政黨이 一旦統合하야 獨立促成中央協議會를結成한것은 一步의前進이요建國의第一階段이라고아니할수업다金九主席은今後 어떠한活動을 할는지 三千萬民衆은 期待하는바 적지안타 이와갓치 우리는 안으로各派統一戰線을結成하는同時에 美軍政當局의施策에一致協力하야 하로라도빨리 自主獨立國家建設을하지안흐면 안된다 이것은 다시論議할必要도업시 三千萬民族이 다갓치熱望하는바로서 民族解放의國內統一戰線을結成하는同時에 三千里疆土에 他人의손을빌것업시우리손으로 建設하여야한다는것은 無條件으로肯定할줄안다 만일에國內의各政黨對立이 錯綜하야 派爭을爲한派爭 或은小吏的自慢에서울어난固執이잇다면 우리가待望하는自主獨立은 實로前途가暗膽하다우리가 스스로政治의能力을 發揮하며 行政의實權을掌握하지안흐면 獨立國家로서의實力을涵養할수업슬뿐아니라 單一國家로서의國際生活에 參加할수도업는것이다여기에우리는 美軍政當局의 一般的施策에積極的協力하며 우리손으로 建國의大業에 邁進하지안으면안된다는것은 두말할것도업는것이다 侵略主義『팟쇼』를破碎한聯合軍은 世界弱少民族을 解放시키여民族自決의 原則에依하야民族單位의 自主獨立國家建設을 期한는것이 第二次世界大戰의目的이요 理想이엇다 이理想과目的을達成시키기爲하야 聯合軍側에積極協力하야 그施策에成果잇도록 卒先挺身하지안흐면안된다 勿論 그施策自體가 朝鮮의自主獨立國家建設을爲하야 適當한가안흔가 하는것도 우리는嚴重警戒하여야할 問題이겟지만 적어도 그것이우리의 建設大業을爲하야 妥當한것이라면 一致協力하여야한다八、一五日以後에國內에는各樣各色으로各層各派는獨立狀態에잇는데 벌서四個月을 마지하게되는今日에도 依然舊態을固執하는傾向이?在하고잇다 이것은여러가지事由도잇겻지만過誤를反省하지못하는데重大原因이잇는줄안다 過去의過誤를 淸算하며反省하야自己批判이잇서야만發展이잇고創造가잇는것이다 어느民族이나國家를勿論하고 獨善的이요 無批判의民族은 運命的이로滅亡을約束하는것으다 또항상反省하며自己批判하는民族은 一時을曲이의잇을지언정 結局은悠久히發展하며 開拓되는것이라는것은歷史가實證하는事實이다우리는各黨各派가 一致協力하야 獨立國家建設에挺身하자!여기에는過去를穿□할것업시 過誤가잇다면反省하야淸算하고 建設에邁進하면 그는곳 發展의길을 前進하는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