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이 성성했지만, 방송 백전노장들의 눈빛은 여전히 현역이었다. 그들은 30년 전 자신들의 일터와 꿈을 강제
로 빼앗겼던 장면을 떠올리며, 이번엔 반드시 부활할 것을 기원했다.
동아방송(DBS) 출신 방송인들이 11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동
아방송이여 영원하라-동아방송 폐방 30년’ 모임을 갖고 동아방송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동아방송은 1963
년 4월 25일 개국한 뒤 1980년 11월 30일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 폐방되기까지 18년간 한국 방송 저널리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참석자들은 “동아일보가 연말에 선정될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격조 높은 민족의 방송’을 지향했던 동아방송의
정신을 계승해가기 바란다”고 기원했다. 행사에는 동아방송 출신 기자, PD, 성우, 아나운서와 동아일보 전현직
임직원을 비롯해 150여명이 참석했다.
폐방 당시 동아방송 보도국장이었던 윤양중 일민문화재단 이사장은 기념사에서 “동아방송은 한국 방송의 모
델이 될만한 혁신적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다”며 “종편을 통해 동아방송이 부활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
다”고 말했다.
‘앵무새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던 이윤하 전 동아방송 국장대리는 “지금도 ‘동아방송은 위대한 방송이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동아일보가 방송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바란다”고 기원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동아방송의 영광 재현과 제2의 동아방송의 부활을 기대하는 ‘우리의 다짐’ 성명서를 채택했다.
안평선 동아방송을 생각하는 모임 회장(전 동아방송 제작부장 대우)이 대독한 성명서에서 동아방송 출신 방송
인들은 △정부는 1980년 당시 군사정권이 강제로 빼앗은 동아방송을 조속히 복원하고 △동아일보사는 동아방
송의 재건을 통해 더 많은 독자와 시청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종합미디어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동아방송 출신들은 새로운 동아방송의 탄생과 발전에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촉구하
고 다짐했다.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은 인사말에서 “동아방송은 연간 청취율 34%를 기록하는 등 국민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동아일보는 종편을 통해 방송 허가를 새로 따려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방송을 다시 찾으려는 것”이
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모임 중 자유롭게 만나 30년 전의 추억을 곱씹었고 새로운 동아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국 최초의 DJ로 동아방송의 인기 음악 프로그램 ‘탑튠쇼’를 진행했던 최동욱 라디오서울코리아 대표는 “동
아방송은 다른 방송이 시도하지 않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과감하게 선보였다”며 “동아일보의 종편 채널도 창
의적인 프로그램을 많이 내놓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폐방 당일 고별특집방송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안녕히 계십시오 여러분’을 송지헌 아나운서와 함께 진행했던
이숙영 아나운서는 “청취자에게 마지막으로 ‘792kHz HLKJ DBS였습니다’라고 말할 때 솟구치는 눈물을 참아
야만 했다”며 “동아방송처럼 사랑받는 방송이 강제로 문을 닫아야 하는 현실이 부당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동아방송 성우 1기 출신인 탤런트 장미자 씨도 “동아방송은 내게 ‘친정’ 같은 곳이다. 여자가 시집을 갔는데 친
정이 없어졌다고 생각해봐라. 하루 빨리 동아방송이 생겨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동아방송에서 방송을 해보는 것
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는 안평선 동아방송을 생각하는 모임 회장(제작)과, 노한성 동송회(보도) 회장이 한달 전부터
만나 기획해 이뤄질 수 있었다. 두 모임은 이날 행사부터 ‘방송동우회’라는 조직으로 통합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