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선생과 같은 반이었던 아버님(신언준)은 정주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상해로 망명해 독립운동가들의 추천으로 1929년 8월 동아일보 상해 남경특파원이 됐다. 윤봉길, 이봉창 의사가 의거하기 전에 김구 선생 앞에서 폭탄 들고 비밀 선서하는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을 외국 기자들에게 돌린 이가 아버님 신 특파원이다.” (신일철 전 고려대 교수, 2004년 8월 18일 면담)
1931년 12월 13일 중국 상하이에서 한인애국단에 백범과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 공원 거사 직전
가입한 뒤 수류탄을 양손에 들고 기념 촬영을 한 찍은 사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태극기가 걸려 있다.
이봉창 의사. (동아일보 자료사진)
1932년 1월 8일과 4월 29일의 이봉창,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백범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의 구심점이 됐고 그의 활약은 신언준 특파원을 통해 동아일보 지면에 새겨졌습니다.
동아일보 1932년 5월 28일자 2면
김구 부하 잠입설로 경찰부 돌연 긴장
삼륜경부 인천에서 활동
출입 선박을 엄계 중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의 삼륜경부는 작 26일 밤에 돌연히 인천에 출장하야 무엇인지 인천서와 협의하고 활동을 계속하는 일방, 사건의 진전을 도경찰부로 보고하고 있다 한다. 사건의 내용은 비밀에 부침으로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김구의 일파가 조선 안으로 들어 온다는 정보가 있는 동시에 동 일파의 직접 행동단들은 중국 기선을 타고 인천항에 하륙한다는 등의 소식이 있는 까닭에 인천 항구를 특히 경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상해폭탄사건 이후 종종 날아오는 전보가 경찰의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동시에 이미 조선 안에 들어와있는 김구 일파가 있다고 전하여 혐의자들을 내탐 중에 있다 한다.
동아일보 1932년 7월 3일자 2면
조사단 入連을 기회로
중대음모 미연 발견
출영 대관 등 ○○을 계획
범인은 김구의 부하 등
【대련발 연합전보】5월 26일 봉천으로부터 대련에 오는 국제연맹조사단 일행을 폭격하려고 대련에 잠입한 상해폭탄사건의 수괴 김구의 부하 조선인 결사대 2명은 조사단 일행이 대련에 오기 2일 전에 대련경찰서원의 손에 체포되어 그 음모는 미연에 방지되었는데 지금까지 판명된 사건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조선에는 宇垣총독 만주엔 本庄사령관 등
◇ 각 거두를 목표로 ○○대 파견
경해할 암살단 계획
김구를 수괴로 하는 조선인 암살단은 4월 29일 상해에서 폭격 계획을 하는 일방 조선과 만주에도 여러 명의 ○○대를 파견하여 조선에서는 우원(宇垣) 총독, 만주에서는 본장(本庄) 내전(內田) 등 대관을 목표로 계획을 진행하게 되었다. 김구의 부하로 제일 민첩한 최흥식이 지난 4월 1일 해로로 대련에 잠입하여 북대산통(北大山通) 조선인 어부 조합 숙소 김정순 방에 숨어 있으면서 비밀히 려순과 대련의 경비 상황과 봉천, 장춘, 하얼빈 등지까지 잠행하여 각지의 경비를 상세히 조사하여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 그의 본부로 부터서는 일본인 대관 만을 ○○하려고 하는 것보다도 연맹조사단 일행이 대련역에 올 때에 폭탄을 던져서 그 연맹단과 또 출영한 일본인 대관들을 일시에 거꾸러 뜨려 국제적으로도 큰 파문을 일으키게 하라고 하여 필경은 그대로 계획을 진행하게 되었다.
동아일보 1932년 8월 23일자 2면
全 만주 요란 계획설로
상해 영경 대활동 개시
조선에도 다수 단원 잠입?
김구와 이청천 등 연락
【상해특신】○○당 군사위원장 김구는 최근 자기가 조직한 극비밀폭력단체인 ○○단을 약 7대로 나누어 만주 방면으로 파견하여 동북의용군 특무대대장 리청천 일파와 연락하여 전만 요란의 책동을 진행 중인데 최근 함경북도 국경지방에서 수비대와 충돌한 군대는 곧 이청천 부하라 한다. 김구 일파가 속속 만주 방면으로 잠입한다는 정보에 의하여 상해 일본영사관 경찰부는 만주와 조선 방면 경찰 당국에 전보하여 상해 방면으로 들어가는 자를 엄중 취체케 하였다. 김구 부하는 조선을 목적하고 들어간 단원들도 다수에 달하는데 그들의 행동은 절대 비밀이므로 알기 어려우나 김구 일파의 만주와 조선에 대한 모종 계획이 있다 하여 상해 일본영사관 경찰에서는 여러 가지로 활동을 개시하는 동시에 만주와 조선 경찰과의 연락에 노력 중이라 한다.
일제는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백범 선생 체포에 혈안이 되었고 일제의 압력을 받은 프랑스 조계 경찰까지 나서 임시정부 요인들을 체포하려 하자 임시정부는 긴 유랑의 길을 걷게 됩니다.
동아일보 1932년 12월 5일자 2면
상해 영경 돌연 활동 중요인물 김철 검거
○○정부 재정부장으로 활동
교통총장 등 요무를 역임 신한청년당 조직 활동
[2일상해특파원 발전] 일본영사관 경찰대는 불조계 모처에 숨어있는 ○○정부 재정부장 김철을 체포했는데 불란서 경찰대는 저지하려다가 못하고 국제법 위반을 이유로 항의를 하였다고 한다. 김철(일명 일강)은 최근 상해 모처에 숨어서 김구 등과 공모하여 여러 가지 책동을 하다 체포됐는데 그는 대정 4년에 상해로 건너가 여운형 김규식 등으로 더불어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조선에 건너와 각지에서 ○○운동자금을 모집하여 가곤 했다.
동아일보 1932년 12월 23일자 2면
상해 ○○정부 개조
위원 9인 선출
의정원 회의 개최
【상해특신】상해○○정부는 최근 개조를 단행하고 새로이 국무위원 9인을 선출하였는데 그 성명은 아래와 같다.
이유필 유동열 이동녕 김구 윤기섭 신익희 차필성 송영석 최동호
또 본월 중순 임시 의정원에서 의회를 소집한 바 각 도 대표로 28인이 출석하였다 한다.
상해임시정부는 ‘상해○○정부’ 로, ‘독립운동’은 ‘○○운동’ 으로, ‘암살 계획’은 ‘○○ 계획’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아일보 1933년 1월 31일자 2면
각지 경찰 인재 선발
상해 특고과 대 확충
4, 5명 경관이 일약 2백명
좌익과 ○○운동 격화로
【상해 특신】당지 총영사관 경찰서를 경찰부로 승격한 이래 경찰 인원은 원래 4, 5명에 불과하던 것을 현재 2백여명으로 확대하고 특히 일본 내지에 있어 좌익운동이 급템포로 확대되고 해외에 있는 조선인의 ○○운동이 맹렬하게 되는 정세에 상해는 이상 모든 운동의 중심이 돼있는 터이므로 특고 경찰부를 대대적으로 확대하였다.
【상해특신】무등대사와 만주국 요인 정효서 씨 암살음모사건을 발단으로 하여 범인 박민항 이창용 손기업 등 3명이 조선 ○○당원인 것이 판명되고 ○○당 군사위원부의 책임자 김구와 중○항일연합군에서도 최근 만주 방면으로 대규모의 ○○단을 파견한 사실이 판명되었다.
동아일보 1933년 2월 5일자 2면
결사대원 50명 만주 모처 잠입?
○○당 대표대회 후에 김구가 인솔 지휘
【상해특신】 모 처 정보에 의하면 ○○에 근거를 둔 ○○당은 최근 모처에서 대표대회를 소집하고 3일 동안 비밀회의를 한 결과 각지에 중요인물을 파견하였다 하며 당지 일본영사관 특고경찰부는 연일 비상경계를 하고 있는 중인데 중국 여러 신문보도에 의하면 김구는 최근 열하를 경유하여 만주 모 지방으로 잠입하였는데 결사대원 50명이 동행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1933년 9월 3일자 2면
김구 일파 활동 개시 만주에 변장대 잠입
除奸團, ○○의용동맹군 조직
中滿 중요시에 지부 설치
【신의주】모처 정보에 의하면 작년 4월 상해에서 백천대장에게 폭탄을 던지고 일대 센세이슌을 일으킨 조선○○단 김구 일파의 중요 분자는 그후 다시 암중 활약을 계속하여 남중 방면에 있어서 항일반만의 불평분자를 규합하여 작년 7월 남경에서 구국제간단을 조직하고 이어서 동아동맹회의 별명인 ○○의용동맹군도 조직하여 김구의 주의를 계승하여 일본 측 요인 암살 ○○운동의 촉진, 반만항일공작등을 표어로 내걸고 상해 신경 북평 천진 방면까지 범위를 넓힌다더라.
동아일보 1933년 9월 18일자 2면
적극 활동 개시코자 항일 ○○군 入滿
배후의 지휘는 김구
【신경】김구를 수령으로 하고 본거를 남경에 둔 조선○○당은 최근 항일 ○○군을 조직하고 금번 9.18사변 기념일을 기하여 적극적 행동을 개시코자 이미 그 간부급 30명을 만주로 밀파하였다 한다.
동아일보 1933년 9월 19일자 2면
남경정부와 긴밀 연락 조선○○당 맹활동
편의대 조직, 만주국 교란 획책
수령 김구 천진 잠복설
【연합봉천18일발】최근 남의사의 반일만 공작이 돌연 공공연하게 시행되고 있는 터인데 이와 동시에 상해에 본부를 둔 조선○○당은 최근 남경정부와 연락을 취하여 조선인으로 편의대를 조직하고 만주국 교란을 기도 중이라 한다. 이 편의대의 수령은 김구로서 최근 천진에서 재만 조선인으로부터 동지를 규합 중이라는 터로 금후의 남의사 활동과 함께 조선○○당의 행동은 극히 주목된다고 한다.
동아일보 1936년 1월 25일자 2면
金九의 밀령으로 잠입한
남경군관생 공판
불경죄는 3년, 엄창복은 2년 구형
금일 방청 금지 리에 개정
남경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에 잠입하여 조선 내 민족공산운동 정세와 관선의 기밀을 조사할 사명을 가지고 엄창복에 관한 치안유지법 위반사건과 일기장과 사진 등에 불온한 문구와 불경한 행위를 감행한 정봉학에 관한 불경죄사건의 공판이 열렸다.
동아일보 1936년 2월 1일자 2면
金九를 수령으로 조선○○당 결성
杭州에서 대회열고 협의
執委員 7명, 감찰 3명
【상해】상해이브닝 포스트지는 30일 통일적 조선○○당이 결성되었다고 보도. 이 보도는 해○○당의 최고 역원으로부터 드러온 것이라한다. 반일분자는 많으나 적으나 ○○운동에 활약하여 온 사람들의 통일적 단체가 없는 것이 운동의 약점이라 하여 대회를 열고 조선 중국 미국에 산재한 동지와 멤버로서 국제적 통일단체를 조직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조직의 수령에는 金九가 선거되어 7인의 집행위원과 3인의 감찰위원이 선거된 모양이다.
동아일보 1936년 3월 4일자 2면
조선○○단 취체를 당국, 남경정부에 경고
중국 측의 裏面 원조 밑에서
金九 金元鳳 등 활동설
【봉천】남경 상해 항주등 남중국 각지에서 근거를 두고 활동하는 조선○○통감부 김구, 김원봉, 김규식, 양기택 등 6명은 2월 중순 장개석 씨를 관저로 방문하고 조선○○군 자금의 원조를 구하여 호의있는 회답을 얻은 듯한 정보가 당국에 도착되었다 하며 또 최근 북평 천진 등 북중국을 무대로 하여 하남성 낙양 조선군관학교 졸업생이 중국공산당과 제휴하여 비밀리에 책동을 개시하고 재만 조선인에게까지 그 손을 뻗치고 있고 그 이면에는 중국 국민당이 음적 양적으로 원조를 주고있는 사실이 명료하다 하여 당국에서는 이들 조선인 취체에 대하여 근간 남경정부에 대하여 구체적 의사표시를 하여 경고를 발하기로 되었다 한다.
동아일보 1936년 7월 1일자 2면
상해서 압래한 兩名은
金九 부하로 판명
유길공사 저격사건에도 연좌
【인천】상해로 부터 입항한 평안환에 실려온 중대범은 2명인데 이들은 김구의 부하로 유길공사 저격사건에 관계했고 옥관빈 암살에도 관계 있는 것으로 경찰은 인정하고 있는 모양이다.
동아일보 1937년 7월 20일자 2면
김구 김원봉 등
낙양에 회합
불온계획을 획책 중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부정조선인의 두목 김구 김원봉 이청천 안공근 등은 금번 북중사변이 발생되자 낙양에 회합하여 모종 불온계획을 획책하고 각지에 산재한 조선인 비행사 20여 명을 낙양으로 모이게 하여 장개석과 합류케 하려한다는 보도가 있어 관계당국은 그 취체를 엄중히 하리라 한다.
상해임시정부는 미군 OSS와 합작으로 국내 침투를 준비하다 해방을 맞았습니다. 김구 선생은 독자적 군사 행동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전쟁이 끝난 것을 통탄했습니다.
“왜적이 항복하였다 한다.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 동안 애를 써서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서안훈련소와 부양훈련소에서 훈련받은 우리 청년들을 조직적, 계획적으로 각종 비밀무기와 전기(電器)를 휴대시켜 산동반도에서 미국 잠수함에 태워 본국으로 침입하게 하여 국내 요소에서 각종 공작을 개시하여 인심을 선동하게 하고, 전신으로 통지하여 무기를 비행기로 운반하여 사용할 것을 미국 육군성과 긴밀히 합작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계획을 한번 실시해 보지도 못하고 왜적이 항복하였으니, 지금까지 들인 정성이 아깝고 다가올 일이 걱정되었다.” (‘백범일지’, 돌베게, 1997, 399쪽)
윤봉길 의사는 의거 직전인 1932년 4월 27일 친필로 백범 김구 선생을 묘사한 송시(頌詩)를 지었습니다.
백범 선생에게
외외청산혜(巍巍靑山兮)여 재육만물(載育萬物)이로다
묘묘창송혜(杳杳蒼松兮)여 불변사시(不變四時)로다
탁탁봉상혜(濯濯鳳翔兮)여 고비천인(高飛千 人+刃길‘인’자)이로다
거세개탁혜(擧世皆濁兮)여 선생독청(先生獨淸)이로다
노당익장혜(老當益莊兮)여 선생의기(先生義氣)로다
와신상담혜(臥薪嘗膽兮)여 선생적성(先生赤誠)이로다
높이 우뚝 솟은 웅장한 푸른 산이여 만물을 품어 기르는도다
저 멀리 곧게 서 있는 푸른 소나무여 사시장철 변함이 없도다
번쩍번쩍 밝게 빛나는 봉항의 날음이여 천 길이나 드높이 날아오르는도다
온 세상이 모두 흐림이여 선생 홀로 맑으시도다
늙을수록 더욱 강건해짐이여 오직 선생의 의기뿐이로다
원수 갚으려 온갖 핍박을 참고 견딤이여 선생의 붉은 정성이로다
윤봉길 의사의 시처럼 백범은 ‘온 세상이 흐린데도 홀로 맑은’ 사람, ‘나이가 들수록 더욱 강건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항일독립운동가 화암(華岩) 정현섭(鄭賢燮)의 회상.
“백범은 이런 분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편단심으로 ‘우리는 왜놈하고 싸워야겠다. 어떤 것에도 불구하고 왜놈하고 싸워야한다’는 굳은 결심, 이 결심 하나로 버틴 사람이지요. 나중에 독립운동 안에 모든 파벌이 다 생겨가지고 동(東)으로 갈 사람은 동으로 가고 서(西)로 갈 사람은 서로 가고,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때에도 변함없이 임정의 간판을 고수한 사람이 백범입니다. 그저 백범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임정의 간판을 메고 다녔지요.” (정현섭, ‘혁명가들의 항일회상’, 민음사 2005, 385~387쪽)
‘백범일지’, 도진순 주해, 돌베개, 1997, 309~310쪽.
이동휘는 호가 성재(誠齋)인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름을 바꾸어 ‘대자유’라 행세하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 총리가 나에게 공원 산보를 청하기에 동반하였더니, 조용히 자기를 도와 달라고 말하였다. 나는 좀 불쾌한 생각이 들어서,
“제가 경무국장으로 총리를 보호하는 터에 직책상 무슨 잘못된 일이 있습니까?”
대답하니, 이씨는 손을 저으면서 답변하였다.
“그런 것이 아니오. 대저 혁명이란 유혈사업으로 어느 민족에게나 대사인데, 현재 우리의 독립운동은 민주주의 혁명에 불과하오. 따라서 이대로 독립을 한 후 또다시 공산혁명을 하게 되니, 두 번 유혈은 우리 민족에게도 큰 불행이오. 그러니 적은 이(아우)도 나와 같이 공산혁명을 하는 것이 어떠하오?”
나는 반문하였다.
“우리가 공산혁명을 하는데 제3국제당의 지휘명령을 받지 않고 우리가 독자적으로 공산혁명을 할 수 있습니까?”
이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불가능하오.”
나는 강경한 어조로 다시 말하였다.
“우리 독립운동이 우리 한민족의 독자성을 떠나서 어느 제3자의 지도 명령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자존성을 상실한 의존성 운동입니다. 선생은 우리 임시정부 헌장에 위배되는 말을 하심이 크게 옳지 못하니, 제(弟)는 선생의 지도를 따를 수 없으며 선생의 자중을 권고합니다.”
그러자, 이씨는 불만스러운 낯빛으로 나와 헤어졌다.
이같은 생각의 백범 김구 선생은 해방 후 격렬한 이념 대립 속에서 또다시 험난한 역사와 마주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