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타계한 다음 날인 8월1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이승재 기자의 오비추어리가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았다. 단순한 취재원과 기자 관계가 아닌, 영혼과 비전을 공유했던 두 사람 간의 못다한 이야기를 이 기자가 보내왔다.



  앙드레 김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리 쉽게 돌아가실 분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평소 직원들이 없는 일요일에도 홀로 의상실에 나와 디자인작업을 할 만큼 일에 대한 집념과 열정이 강한 그를 75세란 나이가 가로막을 거라곤 상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한 달 만인 8월12일 저녁 나는 그가 숨을 거뒀다는 비보를 접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편집국에 전화를 걸어 기사계획을 확인했고 결국 이튿날자로 나와 그의 오랜 만남과 추억을 담은 오비추어리를 쓰게 되었다. 글을 쓰는 나에게 알 수 없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내가 마음 깊이 존경했던 앙드레 김의 믿어지지 않는 죽음을 맞아,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사라는 ‘상품’으로 재생산해내는 기자란 나의 숙명도 참 고약하단 생각을 했다. 글을 쓰면서 그와 내가 차곡차곡 쌓았던 10년의 인연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기사가 나간 뒤 내가 몸담고 있는 (주)동아이지에듀에는 아침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앙드레 김 추모특집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들에 나를 섭외하려는 전화들이었다. 나는 모두 고사했다. 앙드레 김에 관한 유일한 책을 썼다는 이유로 마치 내가 그에 관한 대단한 권위자인양 행세하는 것도 옳지 않았거니와, 그의 죽음을 맞아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에 대한 추억을 이야깃거리 삼아 쏟아내며 그의 죽음을 ‘팔아먹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8월14일 토요일, 서울대병원 영안실을 찾았을 때 앙드레 김의 유일한 아들인 중도 씨가 나를 금방 알아보아주었다. 갑자기 그를 보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고 그도 다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어찌나 슬피 울었던지 옆에서 분위기를 살피던 TV 리포터 한 명이 “혹시 누구신지…”라며 다가왔다. 나는 “그냥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만 말했다.

  중도 씨에게 나는 흰 봉투에 든 편지 한통을 속주머니에서 꺼내어 전했다. 내가 쓴 오비추어리를 인터넷으로 본 재미교포 남성이 내게 ‘앙드레 김의 영전에 바쳐달라’며 메일로 보내온 내용이었다.

  중도 씨는 이 편지를 읽더니 가슴에 꼭 끌어안고는 다시 아버지의 영전에 놓았다. ‘이렇게 진심으로 아버지를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아요’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사실, 앙드레 김은 살아생전 늘 안타까워했던 점이 있었다. 남녀노소 자신을 알아보는 이는 많건만, 정작 자신을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는 패션디자이너보다는 그저 코미디언이나 무슨 우스갯소리 감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을 야속해했었다. “코미디언들이 이상한 영어를 써가면서 나를 흉내 내는 것에 대해 불만은 없어요. 하지만 나를 정말 그런 사람으로 생각할까봐 두려울 때도 있어요”라고 내게 말하곤 했다.

  그의 죽음 뒤 그와 내가 공저자 형태로 낸 책 ‘앙드레 김-My Fantasy’는 결과적으로 그에 관한 유일무이한 책으로 남게 되었고, 이 책은 7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나는 이 책이 그에 관한 많은 오해와 그 속에 숨겨져 있던 진실들을 알려주는 영원한 증거자료가 되기를 희망했다.

  나는 책이 재출간되어 나오자마자 책을 들고 앙드레 김 의상실을 찾아갔다. 아들 중도 씨가 외롭게 앉아있었다. 앙드레 김이 늘 앉아있던 하얀 책상을 쳐다보니 덩그렇게 놓인 의자가 그의 빈자리를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중도 씨에게 책을 전해준 나는 “평생 아버님을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책을 쓸 수 있도록 해준 아버님께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사업방향이나 브랜드 포지셔닝에 대해 내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을 했다. 생전의 앙드레 김은 내게 “우리 아들은 나와 달리 아주 씩씩하고 남자답게 컸어요. 얼마나 저에겐 축복인지 몰라요. 이 기자님, 우리 아들을 잘 지켜보고 또 돌보아주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앞으로도 난 앙드레 김이 새하얀 옷을 입고 서걱서걱하는 소리를 내며 내게 걸어오던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내게 준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앞으로 어떻게 되갚아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추석이 지나면 딸의 손을 잡고 그의 묘소를 꼭 찾아볼 생각이다.

댓글 없음 »

No comments yet.

RSS feed for comments on this post. TrackBack URL

Leave a comment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