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기자들, 피켓을 들다-그들이 거리 시위에 나선 이유 다음주 월요일 공개합니다.”
7월17일자 동아일보 A1면 하단에는 이 같은 문구가 적힌 피켓 그림이 실렸다. 본보가 7월19일 시작한 ‘대한민국, 공존을 향해-통합을 위한 동아일보의 제언’ 시리즈의 티저 광고였다.
시리즈는 7월19일자에 첫 회를 내보면서 시작됐다. 1면과 3면에는 본보 기자들이 천안함 폭침사건과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서한을 보낸 참여연대의 행동에 대해 상반된 주장을 담은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시위를 한 사진과 함께 갈라진 ‘두 개의 한국’을 보여주는 기사가 게재됐다.
시리즈의 키워드인 ‘공존’과 ‘통합’, 사실 평범한 단어다. 동아일보는 이렇게 평범하고, 무거운 단어를 제목으로 내걸고 시리즈를 시작했을까?
●어젠다 TF, 그리고 1달 간의 고민
이번 시리즈는 6월 초 편집국에 ‘아젠다 TF’가 구성되면서 본격화됐다.
천안함 폭침사건과 6월 지방선거 등 주요 정치, 사회적 사건을 거치면서 2010년 대한민국 사회가 갈수록 이념적으로 파편화되고 있는 현실을 ‘대한민국 대표 언론’으로서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전사적 판단과 고민의 결과였다.
김재호 사장 등 임원진들의 고민이 중요한 산파 역할을 했다.
김 사장은 6월 초 기자들과 만나 “동아일보가 보수와 진보를 넘어 대한민국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아젠다를 제시해보자. 동아일보는 이데올로기 틀을 넘어 국격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동아일보가 건국과 민주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가치’를 세우고 높이는 데 기여했듯이, 2010년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한 가치를 동아일보가 고민해 독자들과 공유하자는 취지였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이 총괄을 맡은 아젠다 TF는 편집국 각 부서에서 10명의 기자를 차출해 구성했다.
이들은 부서 업무에서 빠져나와 한 달 여간 서울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 인촌라운지에 ‘베이스 캠프’를 차리고 외부 전문가 등과 함께 한국 사회의 주요 이슈와 현안에 대해 치열한 브레인스토밍을 가졌다. 그 결과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에 필요한 키워드를 공존과 통합으로 설정했다.
●‘공존’을 향해
7월에 시작한 시리즈는 3부로 나눠서 진행 중이다.
시리즈 1부는 ‘성장에서 성숙으로’라는 키워드로 진행했다.
왜 한국 사회가 ‘두 개의 한국’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유독 갈라져있는지를 정면으로 고민했다.
성숙 사회의 특징은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데에 있는 만큼, 우리 사회에 만연한 프레임(틀)의 문제를 거론했다.
자기 만의 틀로 세상과 가치를 규정하는 것을 벗어나보자는 제안이었다.
이를 위해 언론에서 거의 시도하지 않았던 혁신적 접근 방식을 선택했다.
기자들이 사회적으로 인화성 높은 쟁점 이슈를 적은 피켓을 직접 들고 시내로 나가 시민들의 의견을 청취했고, 여야 정치인을 동아미디어센터 방송 스튜디오로 초대해 서로의 입장을 바꿔 주요 이슈에 대한 토론을 시도했다.
2부인 ‘기본으로 돌아가자’에서는 이중 잣대와 법치 등을 다루며 한국 사회가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3부 ‘간격은 좁히고, 희망은 키우고’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격차’와 이를 좁히기 위한 제언 등을 담고 있다.
●“변화를 위한 씨앗 되기를…”
시리즈가 나간 뒤 각계에서 그야말로 뜨거운 반응을 보내주었다.
특히 첫 회로 기자들의 피켓시위 기사를 내보낸 데 대해 참신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가치관의 다양성을 조망해보고, 이를 용인하는 사회로 나가자는 메시지로 읽혀졌다”고 평가했다.
진보진영을 대표해 시리즈에 나선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는 본보 인터뷰 기사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링크해놓기도 했다.
일부 시리즈 기사는 동아닷컴에서 클릭수 10만 건을 넘어서는 등 누리꾼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극단적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말로 공존을 하자고 해도 공존이 되겠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취재팀도 이번 시리즈만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변화할 것으로 보지않는다.
다만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되돌아보고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할 수 있는 작은 씨앗이 되기를 우선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