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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을 트렌드로 만든 뉴욕

Posted by 재기 On 12월 - 16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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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에서 2년을 보내고 돌아온 후 “뉴욕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라는 질문을 자주 접했다. “무엇 무엇이 좋았다‘고 하면 “뉴욕 못 가본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냐” 라는 반응이 돌아올 때가 많았다. 뒤에 생략된 말은 ‘저런 된장녀 같으니…’였을 것이다.



  하지만 뉴욕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다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뉴욕이라면 무조건 거품을 물고 칭찬할까? 정말 뉴욕이라는 도시는 비싸고, 불친절하고, 더럽기만 한 매력 없는 도시일까? 난 뉴욕이 거저 지금의 명성을 얻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맨해튼 웨스트빌리지에 ‘One if by land, Two if by Sea’라는 식당이 있다. 18세기 풍의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뉴욕에서 가장 로맨틱한 식당을 묻는 조사에서 매년 빠지지 않고 1~2위를 다투는 곳이다. 그런데 이 식당의 이름은 미국 독립전쟁의 암호를 따서 만들어졌다.    


독립전쟁 시절, 보스턴의 사업가 폴 리비어는 영국군의 공격에 대비해 교회 첨탑에 두 개의 등불을 달았다. 영국군이 육로로 진격해 오면 등불을 하나만(One if by land), 해상으로 공격해 오면 등불을 두 개 다 밝혀(Two if by Sea) 보스턴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독립전쟁의 암호를 레스토랑의 마케팅에 사용했다는 사실, 놀랍지 않은가. 만약 서울에 일제시대 독립군이 일본군에 사용하던 암호를 내건 식당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식당이 존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과연 사람들이 이 곳을 찾을까? ‘이름부터 너무 촌스럽다’며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남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마케팅 포인트를 잡아내고,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뉴욕을 보겠다고 몰려드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뉴요커들이 한 손에는 커피, 다른 손에는 베이글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일을 꽤 낭만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뉴요커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자기 과시나 멋을 위해서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다. 빵 한 쪽,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실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된장녀의 표식으로 굳어진 브런치는 어떤가.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이 브런치를 마친 후 바로 각자의 일을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는 점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브런치는 맨해튼의 낡은 건물이 만들어 낸 비좁고 불편한 부엌 때문에 외식을 생활화할 수밖에 없는 뉴요커들의 평범한 일상이다. 한국에서처럼 주말 아침에도 따뜻한 밥을 차려주는 엄마가 있다면 뭐 하러 비싼 돈을 들여 밥을 사먹겠는가. 관광객의 눈에 멋져 보이는 뉴요커의 일상은 전쟁이다.



  뉴욕이 대단한 건 자신들이 생존을 위해 하는 평범한 일상 활동들을 시대의 유행으로 만든 힘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밥 먹고 출근하고 일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하는 일이다. 남과 다를 게 없는 일상을 누구나 따라하고 싶게 만들어 버린 건 뉴욕이니까 가능했다는 뜻이다.    


뉴요커의 일상이 나머지 세계에서는 엄청나게 핫한 트렌드로 떠오른 시대. 일상을 트렌드로 만든 그 힘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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