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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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방송의 재발견(下)-시대를 앞선 격조있고 창의적인 방송





 “어느 날 새나라 택시를 탔다. 운전사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어디 방송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운전사는 별 걸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동아방송입니다’라고 말했다.”


  동아방송 개국 멤버인 최창봉 전 MBC 사장이 최근 ‘나와 한국방송’이라는 글에서 밝힌 일화 중 한 대목. 최 전 사장은 “개국과 함께 최고의 청취율을 자랑한 동아방송은 특히 주 청취 기반을 수도권과 지식층에 두고 있어 영향력은 그만큼 독실하고 강력했다”고 회고했다.


  동아방송의 이 같은 영향력은 충실한 보도 기능과 함께 격조와 창의성을 겸비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저널리즘에서 출발하면서도 흥미와 긴장을 잃지 않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제작했고, 원조 ‘오빠부대’ 열풍을 일으킨 오락프로그램으로 청취자를 라디오 앞으로 모았다.




●다큐와 저널리즘드라마 개척

  동아방송은 개국 초부터 뉴스 못지않게 다큐멘터리 분야에 제작 역량을 집중했다. 동아일보의 콘텐츠 생산 노하우를 방송 분야에 접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영역이기도 했다.


  동아 다큐멘터리의 첫 테이프를 끊은 프로그램은 ‘여명 80년’. 갑신정변부터 8·15 광복까지의 우리 근세 정치외교 사건들을 망라한 대작으로 한국 최초의 본격 시사 다큐멘터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여명 80년’은 방송 후 6권의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정계야화’ ‘조선총독부’ ‘특별수사본부’ 등의 기라성같은 다큐가 뒤를 이었다. 동아방송의 상징적 정치다큐 중 하나였던 ‘정계 야화’는 전설의 주먹이었던 김두한 전 의원 등이 직접 출연해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실화 자선극인 ‘이 사람을!’은 세미다큐멘터리 드라마라는 새 장르를 열었다. 이 프로그램은 일본까지 소문이 났다. 당시 NTV에서 ‘논픽션극장’을 연출하던 영화감독 오오시마 나기사가 동아방송을 찾아와 4·19 혁명 때 부상당한 뒤 윤락녀로 전락한 여성 A씨 이야기를 방송하겠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승만 정부의 경무대(청와대) 이야기를 다룬 ‘잘 돼갑니다’는 한국 최초의 정치 드라마로 기록됐는데, 이후 영화로 제작됐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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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송 최초의 DJ 도입

  ‘막장 드라마와 저질 오락프로그램’이 판치는 요즘 방송과는 달리, 동아방송은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첨단의 문화 조류를 시기각각 안방에 전달하는 오락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전영우 아나운서 실장이 진행하던 ‘유쾌한 응접실’은 당시 방송 오락프로그램의 종합판이었다. ‘자칭 국보’ 양주동 박사, 서울상대 김두희 교수 등이 패널로 출연해 매주 다른 주제를 놓고 유쾌한 논쟁을 벌여 전국 청취율 1~3위권을 늘 유지했다.


  최동욱 씨는 ‘톱튠쇼’와 ‘3시의 다이얼’을 진행하며 한국 방송 최초의 디스크자키(DJ)로 자리매김했다. 정해진 원고를 읽는 게 아니라 진행자가 시간대에 맞는 음악과 정보를 제공했다. 동아방송은 뉴스의 앵커처럼, 오락프로그램에 DJ를 도입함으로써 다양한 ‘퍼스낼리티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이런 오락프로그램은 당시로는 생소한 ‘팬덤’(fandom)을 낳았다. ‘탑튠쇼’는 팝 음악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방송 시간 무렵에는 최동욱 씨를 보러 온 ‘오빠부대’가 방송사 주변에 장사진을 차기도 했다.




●첨단의 편성 및 인력 충원 전략

  동아방송이 이렇게 청취자들의 관심을 모은 데에는 시대를 앞서 간 편성 운용 전략도 한 몫했다.


  개국 당시 한국 라디오는 오전 7시 전후와 저녁의 서너 시간 외의 시간은 편성 사각 지대로 방치했으나, 동아방송은 각 시간대마다 주 청취층에 맞는 프로그램을 집중 편성해 저녁 전 낮 시간과 심야 시간을 황금 시간대로 바꿔 놓았다.


  최동욱의 ‘3시의 다이얼’은 이전 같으면 전형적인 사각 편성이었겠으나, 1966년부터 3년 간 당시 공보부 공식 조사에서 청취율 1위를 기록했다. 가수 윤형주, 이장희 씨 등이 진행했던 ‘0시의 다이얼’도 역발상의 편성 전략이 낳은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기존 방송과의 차별화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모아 적재적소에 운용한 것도 주효했다. 서울대 약대 출신의 조동화 씨가 다양한 문화적 경력을 인정받아 제작과장으로 발탁된 것이 그렇다.


  동아방송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는데 개국 공채 당시 기자 8명 모집에 400여명, 아나운서는 8명에 300여명, 성우는 30명에 2000여명이 모여 동아가 만드는 방송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그대로 보여줬다. 성우의 경우 사미자, 전원주, 박정자, 박웅 씨 등이 1기로 합류했고 이들은 지금까지 TV와 연극 분야에서 베테랑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일이면 동아방송이 통폐합된 지 29년 째. 하지만 동아방송의 각종 프로그램과 선배들의 발자취는 새 방송을 준비하는 동아 인들에게 여전히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동아방송을 21세기 뉴미디어 환경에 맞춰 부활시켜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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