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3월이면 ‘March Madness’라는 말이 보통 명사처럼 쓰인다. 번역하면 ‘3월의 광란’인데, 매년 이 때 열리는 미 대학스포츠연맹(NCAA) 주최 전미 대학농구선수권 토너먼트에 쏠리는 스포츠 팬들의 광적인 열기를 빗댄 말이다.
2009년 3월, 우리는 한국 야구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보내 준 또 다른 광란에 행복했다. 그 만큼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보여준 한국 대표팀의 ‘위대한 도전’에 얽힌 추억은 4월에도 생생하다. 이번 대회를 현장에서 지켜 본 편집국 스포츠레저부 이승건 기자가 신문에 싣지 못했던 WBC 취재기와 야구장 이야기를 동네에 보내왔다.
●긴장 가득했던 도쿄돔
3월 3일 도쿄에 도착했다. 한국은 6일 대만과 첫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축구, 골프 등을 취재하러 일본은 여러 번 가봤지만 도쿄는 처음. 당연히 도쿄돔도 처음이었다. 도쿄돔은 야구인들이 돔구장 건립 필요성을 언급할 때마다 ‘엄친아’처럼 거론되는 곳이다.
그런데 도쿄돔은 1988년 개장한 ‘도쿄돔 시티’의 일부였다. 특급호텔, 놀이공원, 야구 박물관에 스크린 경마장까지…. 그야말로 도심 속 초대형 종합 레저 시설이다. 우동 한 그릇이 1000엔(약 1만4000원, 밖으로 나가면 300~400엔짜리도 많았다)이나 되지만 돈만 있다면 모든 게 해결된다. 물론 그 중심은 야구다.
6일 대만을 9-0으로 꺾은 한국은 7일 일본과 만났다. 신문 제작을 안 하는 날. 모처럼 기사 부담 없이 빅게임을 관전했지만 한국은 2-14, 치욕의 콜드게임 패를 당했다. 선수단은 물론 국내 취재진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대회를 마치고 한국에서 만난 WBC ‘홈런왕’ 김태균(한화)은 “일본전 다음 경기인 중국전이 사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긴장됐다. 지면 여기서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콜드패 당시의 충격을 전했다.
다행히 중국을 완파한 한국은 9일 일본과의 순위 결정전에서도 승리했다. 그리고 날씨에 상관없이 1년 내내 경기를 할 수 있지만 동시에 답답한 도쿄돔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젊은’ 펫코파크… ‘영 코리아’ 날다
일본을 떠난 대표팀은 애리조나에 잠시 훈련 캠프를 차린 뒤 14일 본선 라운드가 열리는 샌디에이고에 입성했다. 샌디에이고 펫코파크는 2004년 완공된 ‘젊은 구장’으로 시내 한가운데 자리 잡아 빌딩들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펫코파크는 구장이 넓어 홈런이 좀처럼 나오지 않아 대표적인 ‘투수 친화적 구장’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외야석 뒤편에는 공원을 만들어 가족 단위로 소풍을 나와 야구를 관람할 수 있다. 물론 비싼 입장료를 내야 한다. 야구장 근처의 주차장 요금은 20달러. 이 수입만 해도 웬만한 우리 프로 야구단 입장 수익보다 낫다고 한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은 미국으로 떠나는 나에게 “굳이 시차에 적응하지 말라”고 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경기가 밤 11시에 끝난다고 해봤자 한국은 오후 3시. 아직 지면 확정도 안 된 시간이다. 처음 보낸 기사를 한국 시간 오후 9시 전후까지 다시 고쳐 보내다보면 창 밖에는 먼동이 터오기 일쑤였다.
‘마감 후 술 한 잔’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2006년 아시아경기가 열린 이슬람 국가 카타르에서도 찾아 먹던 술이었는데….
한국은 16일 멕시코와 만났다. 2회 2점을 먼저 내줬지만 결국 8-2로 완승했다. 한국은 18일 열린 세 번째 한일전에서 ‘의사(義士)’ 봉중근(LG)을 선발투수로 내세워 일본을 꺾고 2회 연속 4강을 확정했다. 콜드게임 승으로 기고만장했던 일본은 2연패를 당하며 풀이 죽은 표정이 역력했다.
●잠실구장 같던 다저스타디움
선택받은 4개국만 입성할 수 있었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 날씨는 따뜻했다. 대회 기간 동안 감기로 고생하던 김인식 감독의 콧물도 멈췄다.
실제로 본 다저스타디움은 요즘 같으면 엄두도 못 낼 광활한 대지 위에 있었다. 야구장 주변 주차장은 너무 넓어 끝이 안 보였다. 1만6000대의 차가 동시에 주차할 수 있고 주차 요금은 대 당 15달러. 주차 수입만 한 게임 평균 3억 원이 넘는다. 도심에 있는 펫코파크와 달리 산 중턱에 있는 다저스타디움은 9층으로 되어 있다.
깎아지른 듯한 9층 관중석은 보기에도 아찔한데, 음주 관전을 즐기다 아래로 떨어져 다치는 관중도 있었다고 다저스타디움 관계자가 귀띔했다.
한국은 22일 남미 강호 베네수엘라를 10-2로 대파하고 결승에 올랐다. 평소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는 중남미 야구의 힘을 잘 알고 있는 교민들은 예상 외의 결과에 정말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들에게 한국 대표팀은 강해진 조국의 상징인 듯 했다.
아쉽게 결승에서 진 한국은 25일 전세기에 올랐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버스는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도로를 통제했고 버스 주위를 에스코트했다. 국빈급 대우에 대해 ‘국민 우익수’ 이진영(LG)은 “이런 맛에 WBC 또 오고 싶다니까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귀국하니 돔구장 건설을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번에는 정말 되려나?
시차에 적응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요? 낮에 자나요?
Comment by 지나가다 — 2009/04/03 @ 5:45 오후
‘동네’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외 취재를 나가면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힘든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 시차를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습니다. 수 십 년간 몸에 베인 습관이니까요.
하지만 경험에 비춰보면 외국에 간 첫 날이 무척 중요하더군요. 첫 날 밤잠을 설치면 낮엔 졸고 밤엔 말똥말똥해지는 ‘악순환’이 계속 되더군요.^^
WBC 취재처럼 바로 기사를 써서 마감을 해야 하는 경우는 밤에 거의 잠을 잘 수 없으니 더더욱 시차 적응이 힘듭니다. 이런 해외 취재를 갔다오면 원래 컨디션을 회복하는데 취재 기간의 배가 걸린답니다.ㅠㅠ
동네를 방문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관심 가져주시고 많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Comment by 신이 — 2009/04/03 @ 7:10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