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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기수의 진실 추적기

Posted by 동이 On 3월 - 31 - 2009

  2001년 정원섭 목사는 동아일보 법조팀을 찾아와 1972년 발생한 한 강간살인사건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정 목사는 그 사건에 연루돼 15년 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법조팀은 수개월 간의 인터뷰와 취재 끝에 정 목사가 진범이 아니라는 판단 하에 관련 기사를 잇달아 보도했습니다.
  그리고는 7년 뒤인 2008년 11월, 법원 판결로 정 목사는 강간살인범이라는 누명을 벗게 됩니다. 당시 정 목사를 만나 취재를 했던 신석호 이명건 이정은 기자는 이 보도로 한국기자협회가 선정한 이달의 기자상과 삼성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취재팀이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려드립니다.


 

  ‘사건 2008재고합1 강간치사, 살인
  피고인 정원섭, 목사
  검사 ○○○
  변호인 임영화 정영대
  판결선고 2008.11.28
  주문 피고인은 무죄.’

  새하얀 A4 용지에 찍혀 나온 판결문. ‘피고인은 무죄’라는 한 줄에 모두의 시선이 내리꽂혔다.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은 문장. 한 자리에 모여앉아 판결문을 돌려보는 우리 취재팀 사이에 들뜬 탄성 대신 숙연한 침묵이 흘렀다. 마음 한구석이 뜨끈해졌다.
  2008년 11월 세상에 나온 이 판결문은 1972년 9월 강원 춘천시에서 발생한 초등학교 강간살인사건 피고인에 대한 재심 결과. 36년이나 걸린 힘겨운 진실 게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동아일보에도 마지막 무죄 선고 기사를 쓰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8년 전 한겨울. 누추한 차림으로 동아일보 법조팀을 찾아온 한 노인을 만나면서 우리의 취재는 시작된다.
  정원섭(74) 목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을 복역한 전과자였다. 이후 모범수로 출옥했지만 그에게서 ‘강간살인범’의 딱지는 지워지지 않았다. 가족조차 그를 외면했다. 그런 그에게 사건 당시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가 사건 기록을 넘겼다. 그는 1996년 지병으로 사망하기 전 정 목사의 손을 꼭 잡고 “꼭 다시 한 번 재판을 받아보라”고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누렇게 빛바랜 과거의 사건 기록과, 죽기 전에 꼭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간절함 뿐.

1972년 당시 정원섭 씨의 현장 검증 사진

1972년 당시 정원섭 씨의 현장 검증 사진



  2001년 겨울, 정 목사는 그를 돕겠다고 나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의 임영화 박찬운 이백수 변호사 3명의 도움을 받아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리고 우리를 찾아와 사연을 털어놨다. 그는 쌓인 분노를 감정적으로 하소연하는 여느 ‘법조 피해자’들과 달랐다. 세상을 원망하거나 법을 탓하지 않았다. 그는 “고문과 협박을 이겨내지 못해 허위 자백을 한 결과 무기수가 됐지만 이제라도 진실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속세에서의 영광과 분풀이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 갈 준비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며 미소 지었다.
  그의 이야기를 접한 날, 법조팀은 한 자리에 모였다. 기사화를 결정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그의 무죄를 인정하고 취재에 나설 수 있는 확신이 필요했다. 30년도 더 지난 사건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손댈 수 있을지 등을 놓고 무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철저한 검증의 필요성 앞에 “정말 그는 무죄일까”라는 문제제기도 나왔다.
  사건 기록을 모두 읽고 난 이수형 당시 법조팀장의 판단은 ‘잘못된 수사라는 점이 명백한 만큼 진실을 다시 추적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 재심을 당부하고 작고한 고 이범렬 변호사의 판단도 같았다. 정 목사의 항소심, 상고심을 무료 변론했었던 그는 법률 전문지 ‘시민과 변호사’에 기고한 ‘소금에 절인 잉어’라는 글에서 “아직도 그 사건만 생각하면 창자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고 통탄했었다. 과거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이 난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춘천의 사건 현장에 내려가 증거를 찾아다녔다고 했다. 왜 그는 그렇게도 억울해했을까.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도움을 찾아 헤매면서도 번번이 “진범을 잡아오라”거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만 듣고 돌아서야 했던 정 목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취재가 시작됐다. 1000장이 넘는 사건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피해자의 부검의 및 수사 경찰을 포함한 증인들의 소재와 연락처 파악, 면담, 인터뷰가 3개월 동안 이어졌다. 법전을 뒤졌고, 재심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을 만났고, 증인들의 행방을 수소문했으며, 이들을 만나기 위해 춘천 홍천 천안 진주 등지로 차를 몰고 돌아다녔다. 일부는 이미 사망한 뒤였고 만남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미 높은 자리에 올라간 당시의 검사, 판사들은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다”거나 “할 말이 없다”며 취재를 피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됐던 연필 한 자루, 피처럼 뭔가 불그스레한 것이 묻어있었다던 속옷, 증인들이 그날 정 목사를 마지막으로 봤다는 시간…. 정말 정 목사가 범인임을 말해주는 증거들이었을까.
  간신히 만난 당시 동네 사람들에게서는 예상대로 기록에 적힌 것과는 다른 진술이 쏟아졌다. “협박에 못 이겨 거짓진술을 했다” “경찰서에서 덜덜 떨다가 화장실에 신발을 떨어뜨렸을 정도였다” “부검 소견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등의 진술을 확보했다. 오랜 옛일이었지만 젊은 시절 겁에 질린 채 겪은 고통스런 기억인지라 대부분이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 목사 사건을 다룬 동아일보 기사들

정 목사 사건을 다룬 동아일보 기사들



  동아일보는 이렇게 확인한 내용을 2001년 3월부터 10월까지 13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보도내용과 취재 자료들은 재심청구 사건 재판의 증거로도 제출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형식상 문제를 들어 재심 사유를 기각했다. 허탈함을 부여잡고 우리 취재팀은 담당 변호사들과 함께 통음을 했다. 정 목사가 오히려 “힘내시라”고 우리를 위로했다. 사건은 그렇게 끝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 목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다시 진실 규명을 요청했다. 위원회는 법원에 재심을 권고했고, 이에 따라 춘천지법은 2008년 7월 재심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11월28일, 법원은 정 목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모든 과정은 다시 동아일보에 순서대로 기사화됐다. 우리 취재팀은 이 보도로 2008년 12월 ‘이달의 기자상’과 2009년 3월 ‘삼성언론상’을 받았다.
 
  7년 전 그 때, 그 초라한 노인을 그대로 외면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럼 사람이 알고 보면 정말 범인이더라”는 주변의 농담 섞인 우려에 수긍해 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취재팀은 정 목사 같은 사법 피해자가 이제는 더 이상 없다고 보지 않는다. 서슬 시퍼렇던 유신 시절의 고문과 협박은 없어졌을지언정 지금도 그 어딘가에는 돈 없고 힘없어 법원 문턱에서 억울한 가슴을 쥐어뜯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것, 그리고 어둠 속의 진실을 꺼내 세상과 공유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믿는다.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지인들과 환호하는 정 목사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지인들과 환호하는 정 목사

4 Comments »

  1. 힘겹고 긴 시간들을 진실과 싸워 이기신 멋진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억울하게 오해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등불이 되어주시는 모습, 감사합니다.

    Comment by 감동의물결 — 2009/04/01 @ 3:04 오후

  2. ‘동네’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동아일보가 창간 89주년을 맞은 날입니다.
    부당한 권력의 맞서 민주주의와 문화주의를 실현하기 노력했던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며 앞으로 동아일보가 나아가야할 길을 다시 한번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동아일보는 오늘의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늘 어렵고 힘든 이웃들의 편에 서서 우리 사회의 품격을 지켜내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첫 방문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자주 동네를 찾아주세요.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많이 전해드리겠습니다.

    Comment by 신이 — 2009/04/01 @ 7:25 오후

  3. 정말 다행이군요~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그냥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은데요
    아까운 세월 얼마나 억울하시겠어요~
    무료로 변호해주신 변호사닌들 아직도 그런분들이 계시네요~
    아마 하나님께 자식들 축복 받을 거예요~
    그리고 고문하고 죄 뒤집어쒸운 놈들 그 자녀들 벌 받을 겁니다

    Comment by jacye — 2014/09/21 @ 3:07 오후

  4. 아직도 한국은 참 미개하게 수사를 하는것 같네요~
    똑똑하고 정의로운 분들이 경찰이 되어야 하는데~
    무식하고 비겁한 인간들이 경찰을 하니깐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군요

    Comment by jacye — 2014/09/21 @ 3: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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