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말에 입사한 동아일보 새내기 기자들이 끝날 것 같지 않던 3개월의 경찰서 수습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정식 기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애벌레에서 호랑 나비로의 화려한 비상을 꿈꾸는 동아일보 막내 기자들이 수습 생활을 마치며 쓴 소감문을 ‘동네’에 보내왔습니다.
#1. 2009년 1월 15일, 오후 7시경. 경기도 일산.
벨이 울리고 허겁지겁 전화를 받는다. “수습 남윤서입니다.” 추위에 입이 거의 얼어붙어 “나윤서인니다”라고 했던 것 같다. 전화기 너머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코끝이 매워지면서 눈두덩이 뜨뜻해진다. “아유 괜찮아요, 어머니. 재밌어요. 헤헤…”
거짓말이다. 엄동설한에 새벽부터 12시간이 넘도록 이틀째 남의 집 앞에서 뻗치고 있는데 재미있을 리 없다. 먼저 나를 탓해본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겠다고 했을까.’ 그러다가 계속 ‘대기하라’는 선배를 탓해보기도 하고, 내가 이토록 기다리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탓해보기도 한다.
참다못해 또 초인종을 누른다.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 신경질 섞인 한 전 청장의 부인 목소리가 들리자 다시 말을 걸어 본다. “저기요…정말 아무 것도 안 물어볼게요. 몸 좀 녹이게 따뜻한 물 한잔만 주시면 안 될까요? 저… 아드님이랑 나이도 같은데요.” 말하다 보니 또 서러워져서 반쯤 우는 목소리가 됐지만 부인은 냉랭하다. 어쩔 수 없다. 다시 문 앞에 주저앉아 또 기다린다.
#2. 1월 29일, 오후 9시경. 경기도 안산.
강호순의 형, 그의 동생과 애인, 강호순의 피해자 가족들, 경찰, 강호순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휴대전화의 통화 목록에 가득하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강호순 맏아들과의 통화. 모기 소리만한 강 군의 목소리를 놓칠까 귀에 전화기를 꼭 붙인 채로 나눴던 10분 간의 이야기. 가슴이 아파 선배에게 보고도 안하고 라면 한 박스를 사서 주인도 없는 강호순의 팔곡동 집 앞에 놓아두고 아들 이름을 써 놓았다.
#3. 3월 31일, 현재.
한상률, 강호순, 미네르바… 사건의 주인공들. 아이러니하게도 사건이 있어준 덕분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경찰서 형님들, 소방서 상황실 근무자, 114 안내원, 각 업체 홍보팀, 120 다산콜센터에 또한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짐승 같은’ 수습들을 기자로 만들어주려고 대책 없는 후배의 새벽 보고를 눈 비비며 들었을 선배들, 동아일보에 들어와 지금까지 나를 키운 건 8할이 사건팀 선배들이다.
이상 막 수습을 마친 남윤서입니다.